곡 외울 때까지 듣고 연주 맞출 때까지 연습
어둠속에도 화합 찾는 우릴 보고 용기 얻기를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가 지난달 27일 인천글로리병원에서 공연한 뒤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배희관 고재혁 윤형진 홍득길 한찬수 씨. 강남장애인복지관 제공
“맞아요. 그럼 두 번째 곡은요?” “….” “아,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였는데 아무래도 오늘 오신 분들은 연배가 좀 있으신가 봐요. 곡을 골고루 선정했으니 끝까지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청중이 박수를 친다. 배 씨 등은 사람들이 많이 왔음을 안다. 박수 소리는 청중의 수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인천 글로리병원.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가 정신과 환자 70여 명을 대상으로 연 콘서트의 모습이다.
멤버 5명은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2005년 복지관에서 악기를 배우며 만난 뒤 이듬해 밴드를 결성했다. 4번 출구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숫자 4를 장애인에 비유해 ‘어려움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는 의미다.
이들은 보지 못해서 오히려 더 잘 들을 수 있다고 믿는다. 리더 한찬수 씨(50)는 “악보를 볼 수도, 콩나물 머리(음표)를 그릴 수도 없지만 청각은 더 발달돼 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연주할 곡이 정해지면 우선 수십 번씩 들으며 기타 드럼 베이스 등 자기가 맡은 부분부터 외운다. 그런 뒤에 다시 수십 번씩 맞춰본다. 오래 걸리고 원곡과 달라지기 일쑤지만 우리만의 화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음악은 인생의 동반자다. 고재혁 씨(33)는 대학에 가서야 자신이 망막색소변성증임을 알았다. 절망했지만 노래하며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씨도 18년 동안 한국타이어에서 근무하다가 2003년 시력을 완전히 잃고 회사를 그만둔 뒤 기타를 치며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
다행히 이들의 열정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악기나 자리를 옮기기가 힘들지만 강남장애인복지관의 정원일 씨가 3년 전부터 매니저 역할을 맡아 도와준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도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복권기금을 지원한다.
고 씨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용기와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말에는 시각장애인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