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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 장벽

입력 | 2011-09-05 03:00:00

이슬라모포비아 狂風… 美 240만 무슬림 ‘고난의 10년’




미국에서 태어난 무슬림인 무함마드 엘타헤르 군은 올해 겨우 11세인데 2월 텍사스 주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릴 뻔했다. 아버지와 함께 이집트 여행을 다녀오는 그에게 이민국 심사관은 30분 가까이 ‘이집트 여행 목적이 무엇이냐’ ‘이집트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왜 자주 이집트에 가느냐’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당황해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심사대에서 이민국 사무실로 옮겨 30분가량을 더 조사받은 후에야 가까스로 입국할 수 있었다.

불안한 무슬림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공항에서 특별 보안검색을 받아야 했던 마흐무드 엘타헤르 군(왼쪽)과 아버지 무함마드 씨(왼쪽 사진). 무슬림이었던 남편이 9·11테러로 사망하자 히잡을 머리에 쓰기 시작한 바라힌 아시라피 씨.

아버지 무함마드 씨(45)는 테러라는 단어의 뜻도 잘 모르는 초등학생 아들이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는 것에 화가 나면서도 9·11 이후 미국내 무슬림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사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 자신도 9·11테러 이후 공항에서 다른 탑승객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에 답하고 철저한 짐 검색을 받아야 하며 전신스캐너(알몸 투시기)를 통과하는 등 ‘특별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권에 찍힌 이름이 아랍 계통이고 여행 국가가 이슬람권이면 내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별도의 보안검색이 필요한 인물로 분류된다.

2일 기자가 버지니아 근교 다르 알히즈라 사원에서 무함마드 군을 만나 테러리스트로 몰려 심사를 받은 경험에 대해 묻자 그는 “신경 안 쓴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다시 이집트에 가고 싶지 않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상처받은 동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날 사원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 참석한 무슬림들은 “9·11 이후 미국 사회에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반이슬람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며 “이슬람은 테러와 직결되는 이미지로 미국인들 사이에 각인됐다”고 입을 모았다.

5년 전 소말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보모로 일하고 있는 에이샤 무함마드 씨(24)는 일하러 간 집에서 자신이 머리에 히잡을 두른 것을 보는 순간, 미국인 부모 대부분이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미국 부모들은 이슬람인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10년 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한 그날 이후 미국에 사는 무슬림 240만여 명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최근 여론 조사기관 퓨리서치가 9·11 10주년을 맞아 미국내 무슬림 10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5%는 9·11 이후 미국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답했다. 2007년 조사 때의 52%보다 높아졌다. 응답자의 52%는 미 정부가 무슬림을 감시와 경계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답했다. 9·11 이전부터 일부 미국인들은 ‘이슬람=테러’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9·11을 거치면서 그런 인식이 결정적으로 굳어지고 확산됐다. 특히 9·11 당시 10대 시절을 보낸 18∼27세의 젊은층에서 부정적 시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9·11 이후 미 정부가 전개한 테러리스트 색출 노력에서 유용한 무기는 이민법이다. 테러 혐의는 기소가 쉽지 않은 반면 이민법이나 비자 체류기간 위반에 따른 체포와 국외 추방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는 2005∼2007년 500여 명의 내외국인을 이민관련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대부분 테러 관련 조사를 받아오던 사람들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의 환경보호청 직원 와히다 테신 씨(51·여)도 그중 한 명이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와 2001년 시민권자가 된 그는 2004년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돼 추방됐다. 시민권 신청 서류에 정보를 잘못 기입한 것이 공식적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파키스탄에 있을 당시 일했던 단체가 테러와 관련해 미 정부의 내사를 받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와 이슬람 사이의 높아진 장벽 앞에서 이를 타파하려는 무슬림들의 노력도 힘겹게 벌어지고 있다. 오클라호마에 사는 바라힌 아시라피 씨(39·여)는 9·11이 터지고 2주일 후부터 히잡을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당시 반이슬람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무슬림 여성들은 일부러 히잡을 벗던 때였다. 그의 남편은 9·11 당시 사망한 32명의 무슬림 중 한 명으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맨 위층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이슬람 동족에게 남편을 잃은 그가 히잡을 쓰기로 한 것은 ‘이슬람 교리는 평화를 존중하며 폭력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히잡을 쓴 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야유를 받고 차에 깡통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파와즈’라는 본명보다 ‘토니’라는 미국식 이름을 즐겨 사용했던 팔레스타인 출신 이즈마엘 씨(50)는 9·11 이후 자신의 본래 이름을 다시 쓰고 있다. 미국의 반이슬람 정서를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이슬람 혈통을 감추기보다 분명히 밝히기로 한 것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내 이름을 정확하게 소개하는 것도 미국 사회와 이슬람 간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존 에스포지토 조지타운대 종교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국 내 무슬림은 주류 사회에 융합되고 싶어 하지만 반이슬람 분위기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이슬람 혈통을 숨기거나 이슬람 과격사상에 물드는 극단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이슬람단체연합회 회장을 지낸 조하리 압둘 말리크 히즈라 씨는 “무슬림은 미국에 수많은 사원, 학교, 주민센터를 세웠지만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며 “바깥 세계로 나와 더욱 이슬람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