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기관(MI6)은 2002∼2004년 리비아 정보국과 함께 반(反)카다피 활동을 벌이는 이슬람 테러 용의자의 리비아 송환 작전에 가담했다. 이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가 풀리기 이전이다. 유엔은 2003년 핵 포기 선언을 한 리비아에 대해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했으며 미국은 2004년 경제제재를 완화했다.
최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카다피 정권 몰락 직전까지 외교장관을 지낸 무사 쿠사가 트리폴리 시내에 소유하고 있던 정보국 해외정보국장 시절 사무실에서 기밀문서들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비아 출신 이슬람 급진주의자 목록을 비롯해 이들의 송환 일정, CIA가 작성한 이들의 심문 질의 목록 등이 적혀 있다. 내용을 보면 미국 영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홍콩 파키스탄 등의 정보기관들이 테러 용의자를 리비아에 송환하는 데 협력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MI6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이슬람을 겨냥한 암살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프랑스 정보기관과 함께 그를 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와 MI6가 정기적으로 리비아 정보국 요원들과 주고받은 팩스 문건에는 “너의 친구 마크”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등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현도 눈에 띄었다. 서방 정보요원들은 리비아 정보국에 잘 보이려 미묘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같은 사실은 서방의 대테러리즘 전략에 새로운 물음을 던지게 한다”고 5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CIA 제니퍼 영블러드 대변인은 “중앙정보기관이 자국민을 테러리즘과 다른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외국 정부와 협력한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한 바”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고위 관리는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