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①좋은 일이다. 국민 실생활과는 무관한 일로 여야가 멱살잡이를 하거나 ‘A와 B가 한편 먹었다’는 뉴스가 판치던 기존 정치행태보다 이쪽이 낫다. 이는 또 우리가 ‘앞으로 어떤 형태의 복지사회를 지향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사회가 두터워졌다는 뜻이다. 능동적으로 이 상황을 맞을 만하다.
‘거룩한 분노’는 그리 많이 필요없다
②염려스러운 것은 이 논의가 편 가르기 식 흑백공방으로 흐르는 것이다. 4대강, 세종시 등에서 보듯 정책어젠다가 정치에 오염되면 이성적으로 해결되기 힘들다. 대개 정쟁 도구로 전락해 당파적 이익에 복무하고 만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되면 개별 복지정책의 장단점, 우선순위, 적정 수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된다.
사실 투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룩한 분노’ 같은 것이 동원될 문제가 아니었다. ‘전면급식 대 단계급식’이라는 구도에서 보듯 제도 도입 완급의 논쟁이었다. 내년 급식지출액 4000억 원과 3000억 원 간 대립이었으며, 서울시 예산에 국한하면 700억 원 차이였다. 타협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반(反)복지포퓰리즘 잔다르크’ ‘보편복지의 보루’ 등으로 스스로를 이미지화하면서 사생결단했다. 과도한 의미부여와 정치적 근본주의는 일반 시민의 눈에 이상하고 우스웠다. 결과는 투표 외면이었다.
낙태와 관련해 미국 민주당은 임신여성의 선택권을, 공화당은 태아의 생명권을 각각 우선시한다. 이 문제가 정권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논쟁이 뜨겁다. 반면에 한국 정당들은 이에 대해 의견이 없다. 사형 존엄사 대체복무 동성애 등도 정치적 진공지대에 방치돼 있다. “한국 정치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는 공적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과정이며, 충돌하는 가치를 조정하는 것이 본래 역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타당한 비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좀 다른 사정도 있다. 무상급식, 4대강, 세종시에서 보듯 정책어젠다가 정치무대로 옮겨오는 순간 공익은 간 데 없고 정파적 이해만 활개쳤다. 광우병 촛불시위, 원전, 영남권 신공항도 그랬다. 투표 직전 나온 “무상급식은 북한을 연상시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주장은 우리 담론 풍토의 척박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낙태 존엄사 등의 의제까지 그런 식으로 난도질 당할까 봐 걱정되는 거다.
투사보다는 유연한 합리주의를
최근 시작된 ‘안철수 신드롬’도 과잉정치화에 따른 가치와 상식의 실종, 정치의 타락에 대한 시민적 분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민은 당리(黨利)와 이념의 투사가 아니라 사람냄새 나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합리주의자를 갈망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생활의 문제를 보듬고 안아주기를 바란다. 제발 ‘정책을 정책 그대로’ 다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