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산업부
네덜란드의 파프리카 농장을 방문했을 때다. 유리온실 안에 들어가자 20대의 금발 미녀가 눈에 띄었다. 스타일리시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는 이어폰을 꼽고 즐겁게 노래까지 부르며 다른 젊은이들과 어울려 일했다. 국내 농촌현장에서 허리가 90도로 굽은 60∼80대 할머니 인부들만 본 기자로서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신나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네덜란드 농가 생산자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 농업인들은 주로 20∼50대”라며 “이 젊은 영농인들은 생산자라기보다는 창업자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마케팅의 개념을 이해하는 교육받은 농부들이자, 내수를 넘어 수출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의식도 강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20∼40대 젊은 농장주가 주변의 소규모 농가를 인수하거나 공동 경영하는 사례가 많아져 농가 대형화가 드라마틱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 젖소를 처음 본 것은 축산 강국 덴마크에서였다. 농장의 젖소들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젖을 짜고 있었다. 젖이 찬 젖소들이 착유기 쪽으로 걸어가면 착유기의 센서가 자동으로 젖소의 젖꼭지를 찾아 세척한 뒤 짜내기 시작했다. 이 지역 젖소들은 날 때부터 훈련을 받기 때문에 매일 젖이 차면 자연스럽게 착유기로 향한다는 설명이었다. ‘부모상(喪)을 당한 날에도 젖을 짜야 한다’는 국내 낙농업계의 힘든 현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덕분에 유럽 낙농가의 하루는 매우 여유롭고 안락해 보였다.
유럽의 농가들은 젊고, 크고, 똑똑했다. 하나하나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 우리 농업은 무엇을 할 것인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다.
임우선 산업부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