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길 뚫리자 사라진 장수마을… ‘훈자’에서 순수의 날개 펴다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대장 박정헌)는 바로 이 길을 통해 파키스탄 북부 훈자 지역에 들어섰다. 지난달 말부터 9월 초까지 훈자 일대에 머물며 연습 비행을 실시하고 다음 이동 경로를 조사한 원정대는 13일 현재 훈자 지역을 떠나 파키스탄 북부 발토르 빙하 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훈자는 라카포시(7788m), 골든피크(7027m), 레이디핑거(6000m), 울타르피크(7388m) 등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는 크게 세 마을이 있는데 마을마다 쓰는 말이 다르다.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아랫동네와 윗동네 사람들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니 신기했다.
파키스탄 북부 훈자 지역 인근 곤도고로라에서 훈련을 겸한 정찰 비행에 나선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원. 창 모양의 뾰족한 라일라 피크(해발 6096m)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훈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편 마을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있다는 또 다른 주민은 이 지역의 조상들이 본래는 산중을 떠돌며 약탈을 일삼던 산적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비밀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훈자는 장수 마을로도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장수의 비결을 찾아 이곳에 왔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훈자는 장수마을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주범으로 꼽았다. 예전엔 길이 막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고 열심히 일해야 했다. 조미료도 안 쓰고 그야말로 참살이 음식만 먹어 실제로 100세 이상 노인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길이 뚫리면서 공산품이 대량 유입되고 관광객이 늘면서 힘든 일을 덜하게 됐다. 비만 인구가 늘었다. 이제 100세 이상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한국의 한 연구진이 최근 이 마을에서 100세 이상 노인들을 찾아다녔는데 3명뿐이었다고 했다.
훈자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 장면. 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훈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 깊은 산속의 삶에까지 대량 생산과 국제분쟁의 여파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그 마지막 순수의 땅을 찾아 대원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