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실패’의 전과가 많은 이명박 정부에서 그나마 참신했던 인사로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과 이봉화 차관 인사를 꼽고 싶다. 비(非)여성업무 부처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장차관에 임명된 사건은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유쾌하고 창의적인 인사였다. 이 차관이 ‘쌀 직불금’ 파동으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전-이 여성 장차관의 행보가 제법 뉴스거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정부 내 최고위직 여성이었던 장옥주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이 지난달 물러났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1급 공무원들을 사퇴시키는 차원에서 사표를 받았다. ‘여성 행정고시 2호’인 장 실장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현안을 잘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지부 안팎에서는 진 장관이 아까운 여성 인재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출신 여성 의원들이 여성 보좌관 채용에 소극적이란 말도 나온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서울시장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친박계의 기류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과 서울시장 후보 모두 여성이 출마하는 것은 전략상 불리하다는 이유로 친박 의원들은 나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나 의원의 출마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 의원 이외에 마땅한 시장후보감이 없다는 현실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여(女)-여(女) 구도’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인식 변화도 작용했을 법하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 여성 각료를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집무실이나 각료회의에 등장하는 여성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왕처럼 행세하는 그에 대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언짢아했다. 대처 퇴임 후에 여왕은 “무슨 일이든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는 그를 싫어했다”고 사석에서 말했다. 반면 여성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재임 시절 남녀 동수내각을 구성하며 여성 각료 발굴에 적극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유리천장이 깨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와 나경원이 여성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