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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황태훈]최동원과 못다 한 이야기

입력 | 2011-09-16 03:00:00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간절하죠. 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요. 팬이 원하고 구단이 원해야지.”

14일 별세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은 생전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정팀 롯데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지만 넘기 힘든 벽이라는 얘기였다.

최 전 감독은 2007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완쾌됐다고 했다. 하지만 올 들어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선 대장암이 재발됐다고 했다. 다른 조직으로까지 전이돼 항암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최 전 감독은 거부했다. 그 대신 식이요법으로 암을 이기려 했다. 외부에는 철저히 이 사실을 숨겼다. 7월 22일 목동에서 열린 모교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이벤트 경기에 참석했다. 그는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몸은 괜찮다”고 거듭 말했다. 그날 이후 최 전 감독은 종적을 감췄다. 거의 매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7월 26일 통화가 됐다. “나중에 보자”는 그의 목소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휴”라고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최 전 감독은 8월 3일 “야구는 밖에 있어도 준비할 수 있다”며 지도자 복귀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야구 발전을 위해 (지도자로) 봉사할 기회를 준다면 감사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 부산과 인접한 창원을 연고로 한 제9구단 NC에 관심을 보였다. 구체적인 마스터플랜도 있었다. “단순히 공 잘 던지고 잘 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작전 수행 능력과 주위 평판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지. 좋은 선후배들과 팀을 꾸리면 얼마나 좋겠어.”

마지막으로 통화가 된 지난달 18일 최 전 감독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발음도 흐릿했다. 병세가 악화된 거였다. 최 전 감독은 6일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7일에야 최 전 감독의 부인은 남편이 중태에 빠졌음을 알려줬다. 자존심이 강했던 최 전 감독이 절대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최 전 감독은 1988년 시즌을 끝으로 롯데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선수협의회를 추진한 게 이유였다. 그것으로 최 전 감독과 롯데의 인연은 영영 끝이었다. 그의 지도자 인생은 은퇴한 지 10년이 넘어 해본 한화 코칭스태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롯데 구단은 최 전 감독이 세상을 뜬 뒤에야 그를 명예감독으로 추대하고 선수 시절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괘씸죄를 푸는 데 무려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고인이 그토록 원했던 친정팀에서 지도자를 하겠다는 꿈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롯데는 최고 인기구단이지만 영웅에 대한 예우에는 인색했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