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암벽등반의 신진 대표주자인 바르바라 창걸이 등반용 로프에 의지한 채 보기에도 아찔한 거대 암벽을 오르고 있다. 아디다스 제공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베아트 카머란더(52·오스트리아)는 암벽 등반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을 즐긴다’는 표현도 추상적이지만, 과연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것일까.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127시간’(2010년)을 본 사람이라면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127시간’은 2003년 미국 유타 주의 블루존캐니언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존 인물인 에런 랠스턴은 당시 굴러떨어진 바위와 절벽 사이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만 5일, 즉 127시간 만에 직접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했다.)
그래도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세계적으로 크게 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호인 수가
인체공학적 설계의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험난한 ‘바위 타기’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라면 아마도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이달 초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아디다스 테렉스 암벽등반팀’과 만나 궁금증 해소에 나섰다. 베아트 카머란더, 베른트 창걸(33·오스트리아), 바르바라 창걸(23·여·오스트리아·베른트의 친구이지만 가족은 아님), 루카스 이르믈러(23·독일) 등 4명이 그들이다.
○ 왜 목숨 걸고 암벽에 오르나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난 아디다스 테렉스 암벽등반팀. 왼쪽부터 베아트 카머란더, 베른트 창걸, 바르바라 창걸, 루카스 이르믈러. 아디다스 제공
세계 최고의 암벽 등반가들 역시 등반 중 맞부딪히는 위험에 대해선 일반인과 비슷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암벽 등반의 ‘치명적 매력’을 알고 있다.
자연 그대로에서, 또 그 자연과 융화한 자신의 모습에서 암벽 등반의 진정한 매력을 찾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면서 등반하는 ‘클린 클라이밍(친환경 등반)’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산을 오르내릴 때 자일(등산용 로프)을 묶기 위해 바위에 못을 박는 등의 자연훼손 행위를 최대한 자제하는 방식. 베른트는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답고, 우리는 그 자연을 사랑한다. 그것이 친환경 등반을 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 남사당 외줄타기와 비슷한 슬랙라인도
‘등산의 꽃’이라 불리는 암벽 등반은 산악인들이 1760년대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에 도전한 것을 시초로 여긴다. 유럽에서는 1800년대 중반 이미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암벽 등반이 황금기를 맞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등반 기술 및 도구의 획기적 진보로 악명 높은 암벽들이 하나하나 정복됐다. 1950년대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 계곡에서 등산장비 없이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프리 클라이밍(자유등반)’이 등장했다. 1970년대엔 최근 각광을 받는 자연보호주의의 확산에 기인한 친환경 등반이 탄생했다.
전문 산악인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암벽 등반이 점차 대중화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다.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곳곳에 인공암벽이 앞다퉈 설치되면서 ‘스포츠 클라이밍’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1988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폭 5m, 높이 4m의 인공벽면 ‘살레와 월’이 설치된 이래 현재까지 200곳이 넘는 실내·외 인공암벽이 설치돼 있다.
한편 요즘에는 외줄타기의 일종인 ‘슬랙라인(Slack Line)’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에 외줄을 연결해 건너던 것을 스포츠화한 종목으로, 최근 재주부리기 등 한국 남사당 줄타기의 요소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사당 줄타기는 동그란 밧줄을 사용하지만 슬랙라인은 허리띠처럼 납작한 줄을 쓰는 게 다르다.
슬랙라인은 아디다스팀의 일원인 루카스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는 “슬랙라인은 공간의 제한을 창조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스포츠”라며 “땅 위의 낮은 구조물 사이에 줄을 설치할 수도 있지만 암벽 꼭대기와 꼭대기 또는 빌딩과 빌딩 사이를 연결해 도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30여 년 전 미국에서 시작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수백 년 전부터 한국에서 비슷한 스포츠를 하고 있었다니 매우 놀랍다”고 덧붙였다.
○ 여성 클라이머 움직임은 하나의 예술
등반가들이 암벽 등반 초보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연암벽이든 인공암벽이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무리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카머란더는 “어떤 운동이든 과도한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며 “우선 당신의 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체 능력, 현재의 몸 상태 등을 충분히 파악한 뒤 적당한 난이도에 도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베른트도 “피곤하면 쉬어가라. 내게 맞는 목표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목표를 이루면 된다”고 조언했다.
여성이라고 미리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 신진 여성 등반가의 대표주자인 바르바라는 “암벽 등반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남자건 여자건 모두가 똑같다. 여자가 타고난 근력이 약할 수는 있지만 점차 강해질 수 있고,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불리할 것은 없다”고 했다. 이에 카머란더는 “클라이밍에서는 여성의 섬세한 움직임이 오히려 더 유리하다. 여성 클라이머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예술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다만 암벽 등반에 있어 집중력은 곧 안전과 직결된다. 카머란더는 “위험성이 적다고 생각될 때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100% 안전하게 등반을 할 수 있다. 한 포인트에서 다른 포인트로 옮겨갈 때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S 행복을 주제로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미국 클레어몬트대 피터드러커대학원)의 책에는 암벽 등반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암벽 등반을 통해 몰입을 통한 행복(플로·flow)을 느꼈다고 강조한다. 플로는 행위에 깊게 몰입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스포츠 클라이밍에 관한 Q&A
Q. 운동 효과는….
A. 스포츠 클라이밍은 전신 운동이며 유·무산소 동시 운동이다. 남성은 등 및 복부 근력 강화, 여성은 체지방 감소로 인한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 초보자의 경우 클라이밍 전에 10분 이상 스트레칭을 해 근육을 풀어줘야 인대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Q. 필요한 장비는….
A. 바닥이 단단한 고무로 만들어진 암벽화와 안전벨트, 등반로프(자일), 손에 바르는 초크, 퀵드로 세트, 잠금 비너, 빌레이 장비 등은 필수다. 국제 규격에 맞는 장비만 제대로 갖춘다면 클라이밍은 안전한 스포츠다.
Q. 국내에서는 어디가 유명한가
A. 강원 원주시 간현암과 전북 고창군 선운산이 대표적이고 서울에도 도봉산과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 등 괜찮은 자연 암벽 포인트가 꽤 많다. 실내외 인공암장은 현재 전국에 240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Q. 비용은….
A. 시설마다 다르고, 월 이용료는 평균 4만∼10만 원 선이다.
Q.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는 게 있다면….
A. 사설 암벽장을 찾아갈 경우 무보험인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허가받은 시설인지, 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