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엔 8.5km 벼랑길, 귓전엔 바다의 노랫소리
-‘모든 섬은 따뜻하다’, 이승훈
○ 왕실에 소나무 공급하던 섬
금오도는 우리나라에서 스물한 번째로 큰 섬이다. 작지 않다는 얘기다. 자라의 모습을 닮아 ‘자라 오(鰲)’ 자가 이름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숲이 무척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거무섬’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원시림이 잘 보존됐었다는 이 섬은 조선시대 궁궐을 보수하거나, 임금의 관을 짜거나, 판옥선 같은 전투선을 만드는 소나무를 공급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일반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봉산(封山·입산과 벌채를 금하는 제한구역)이 됐다.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산림의 황폐화 때문이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섬의 좋은 나무들을 모두 벌목한 그 해 가을, 태풍이 불어 남은 나무들까지 큰 피해를 보았다. 이후 봉산이 해제되고 일반인의 이주가 허용됐다. 주변 바다는 구한말 전라도 앞바다에 침입한 일본 어선이 최초로 고기잡이를 했던 황금어장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선인보다 우수한 장비로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하지만 냉동·저장시설이 없어 수많은 물고기를 현지 시장에 헐값으로 내다 팔아 조선 어민에게 큰 피해를 줬다. 먹을 사람이 없는 생선은 논밭에 비료로 나가 개와 돼지들만 배를 불렸다. 이 일본인들은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되돌아갔다고 한다.
○ 바다 따라 도는 ‘비렁길’ 절경
최근 금오도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비렁길’이라는 산책로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비렁’이란 여수의 옛말로 ‘벼랑’을 뜻한다. 약 8.5km의 길은 해안선의 벼랑과 산을 따라 큰 높낮이 없이 이어져 있다. 비렁길을 걸어보면 길모퉁이를 돌아 펼쳐지는 바다 풍광에 연달아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길을 걷다 너른 바위 위에서 수평선을 베개 삼아 누워 두어 번 쉬다 보면 금세 길이 끝나는 섬의 허리 부분인 직포에 다다른다.
오후 늦게 도착한 직포에는 어느덧 저녁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해변에는 커다랗고 오래된 노송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다행히(?) 못생겨서 살아남은 나무들이다. 내버려 둔 나무가 이 정도인데 베어나간 나무들은 얼마나 더 거대했을까. 상상 속의 섬은 이내 짙푸르고 웅장한 모습으로 현실과 겹쳐졌다. 섬에 딱 2대 뿐인 택시를 부른 후 노송들 사이로 물들기 시작한 저녁놀을 감상했다. 어느새 도착한 택시 기사님이 재촉한다.
포구를 향해 달려가는 택시는 마치 여수까지라도 날아갈 듯한 기세로 속도를 높였다. 다행히 마지막 배가 출발하기 직전 배에 올랐다. 배 뒤에 서서 멀어지는 섬을 바라봤다.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던 대부산이 손바닥으로 가려질 정도로 작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섬 뒤로 사라졌다. 문득 오래 전 전남 신안의 어느 작은 섬으로 홀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밤 파도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민박집 작은 방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아 툇마루로 나가 앉았다. 달도 없는 깊은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주변은 온통 파도소리로 가득했다. 눈을 감자 바다 한가운데 홀로 있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온 바다가 주위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섬은 외로웠지만 따뜻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가벼운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 마지막 배를 놓쳤어야 하는 건데!”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