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영국 BBC·2003년)》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현재 정세나 일의 진행 상황을 뜻하는 정치 용어)’는 영국의 유명 방송작가 폴 애벗 원작에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감독한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이 연출한 6부작 드라마다. 이런 평범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여러 말로 수식해봤자 글만 구차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보시라. 재미있다.
잘 짜여진 플롯, 적절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도 있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재미는 따로 있다. 바로 기자와 언론사라는, 나름 베일에 싸여있는 세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칼은 후배, 동료들과 함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실을 캐기 시작한다. 이들의 취재기법은 불법과 탈법을 예사로 넘나든다. 돈으로 취재원의 정보를 사는 건 애교로 보아 넘길 정도다. 심지어 경찰도 매수의 대상으로 삼고 거짓말, 변장, 도청은 물론이고 범죄의 주요 증거물을 경찰 몰래 숨기기까지 한다. 자동차 트렁크 안에는 언제든 사람을 속일 수 있도록 변장 도구를 숨겨 둔다. 이런 방법은 종종 효력을 발휘해서 가끔은 법대로 수사하는 경찰보다 기자가 더 빨리 사실에 접근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취재를 하는지가 모호해진다. 아니, 애초부터 분명치가 않았다. 이들은 과연 ‘진실을 보도해 공익에 도움을 준다’는 기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자극적인 얘깃거리에 눈이 멀어 누군가의 인생을 물어뜯는 것일까.
나 역시 늘 그런 모호함에 부닥치곤 한다. 사건이 터지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얘깃거리’를 찾는다. 사실과 사실을 취재해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다 보면 ‘왜 이걸 취재하고 있지?’라는 질문은 사건이 우수수 지나가고 난 뒤에야 개운치 않은 뒷맛과 함께 남는다. 분명 내 손으로 누군가의 슬픔이나 고통, 분노를 들쑤시던 그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칼의 친구이자 촉망받는 야당 정치인인 스티븐 콜린스 의원(데이비드 모리시)은 칼과 다투다 그런 언론의 속성을 꿰뚫는 독설을 날린다. “그건 직업도 아냐. 쓰레기일 뿐이지. 너 같은 놈들은 누가 가십이나 절망이나 온갖 쓰레기를 떠먹여 줄 때까지 앉아서 아무것도 못하잖아!”
P.S. 워낙 드라마가 유명해 2009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으나 러셀 크로의 원맨쇼에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 보지 않았다.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