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윤보인 지음/288쪽·1만1000원·문학과지성사
단편 ‘뱀’에서 스물다섯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헌책방 여주인은 헌책 속에서 작은 반지를 발견한다. 그 책을 팔았던 남자가 반지를 찾으러 왔지만 남자에게 관심이 있던 여자는 반지를 숨긴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가 키우던 뱀은 반지를 삼키고, 허물을 벗은 뒤 도망간다. 애타게 반지와 뱀을 찾던 여자는 자신의 성기 속에서 뱀을 찾는다. 반지는 ‘사랑’으로, 뱀은 ‘욕망’으로 변주돼 점점 여자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몸속으로 들어간다.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단편 ‘악취’는 문명화된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여성은 지독한 악취를 맡는 것을 즐긴다. 고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방치해 그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정도다. “가식적”이라며 현대화된 냄새인 향수를 거부한 여성은 “쉽게 볼 수 없는 폐허 같다”며 악취를 더욱 병적으로 쫓는다.
비현실적인 단편들에 비해 중편 ‘바실리 사원’과 ‘살풀이 춤’은 고뇌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끄집어낸다. ‘바실리 사원’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마이미스트들을 통해 ‘언어가 지워진 자리에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마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살풀이 춤’은 고된 삶 속에서 춤을 완성하는 예술가를 그린다.
단편 다섯 편, 중편 두 편을 묶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상징적 체계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충동이나 욕망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