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6일 뾰족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집권 3년차인 지난해 초부터 “게이트니 비리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느라 종일 숨죽인 분위기였다.
청와대는 김 수석에 이어 또 다른 청와대 인사가 연루됐는지를 가장 크게 걱정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김 수석에게 출두를 통보한 사실이 확인된 15일 오후 내부 회의를 열어 추가 소환자가 있을지를 점검했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답답한 심정에 만든 자리였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선 첫 소환 대상이 김 수석이란 점을 놓고 엇갈린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추가 소환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쪽도 있었고 “더 이상 ‘현직 수석급’은 없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조차도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김 수석의 위상을 감안할 때 과거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말 청와대 핵심부에서 터진 ‘변양균 사건’의 재판(再版)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07년 여름 변양균 당시 대통령정책실장과 신정아 씨가 연인 관계이며 변 실장이 영향력을 발휘해 신 씨를 위해 정부 예산을 부적절하게 책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변 실장의 해명만을 듣고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을 추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훗날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 참모는 “김 수석이 검찰에서 제대로 해명해 (기소되지 않고)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청와대가 그를 옹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춘추관 기자실에 “행정 절차상 시간이 좀 걸리지만 김 수석을 ‘전(前) 수석’으로 표기해도 좋다”고 알려오기도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전날부터 검찰 주변에서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권 초기에 핵심 역할을 한 A 씨, 이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고위인사 B 씨, 청와대를 떠난 고위인사 C 씨 등이다. 박태규 씨의 로비 목적이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에 있었던 만큼 일부 경제부처 관리들의 연루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수사에서 청와대 핵심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자 여의도 정치권은 크게 술렁였다. 김 수석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 이름도 나오고 있다는 얘기에 여야 할 것 없이 바짝 긴장했다. 어느 정당이 더 연루됐느냐에 따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주변에선 부산 지역의 몇몇 국회의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또 다른 의원은 박 씨와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부산저축은행이 투자한 법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긴장감 도는 검찰 부산저축은행의 핵심 로비스트인 박태규 씨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에는 16일 내내 긴장감이 흘렀다. 한 대검 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국회 저축은행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내가 듣기로는 ‘박태규 리스트’에 여당 의원 이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김 수석 소환을 계기로 “박태규 로비사건은 민주당이 아닌 여당의 문제”라며 야당과의 연루 의혹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부산저축은행의 소유주나 경영진이 대부분 호남 출신이란 점에서 ‘옛 정부에서 급성장한 저축은행의 로비 대상은 민주당’이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받아왔다. 다만 검찰이 야당 인사 소환을 앞두고 ‘야당 탄압’ 비판을 피하기 위해 여당 인사를 먼저 소환했던 전례를 떠올리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