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 차장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는 그리스가 자신의 운명을 이처럼 이웃국가의 손에 맡기게 된 원인을 많은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복지 포퓰리즘과 ‘적자 경제(deficit economy)’에서 찾는다. 그리스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경제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1980, 90년대 사회주의 정부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과다하게 팽창했고 공무원과 노조는 높은 임금상승률 잔치를 벌이면서 재정적자가 쌓여갔다. 1995∼2008년 그리스의 공무원 1인당 연평균 실질임금상승률은 유로지역 평균의 두 배에 달했고 공공부문의 과잉인력은 25%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회보장 지출을 늘렸다. 지난해 그리스의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8.0%로, 미국(7.0%) 캐나다(9.2%)의 두 배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2%보다도 훨씬 높았다. 또 그리스 공적연금의 임금 보전 비율은 95%나 된다. 퇴직 후 받는 공적연금이 퇴직 직전 임금의 95%라는 얘기다. 유로존에서도 가장 높다. 독일이 36%, 프랑스가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의 공적연금이 얼마나 후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의 대외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스 정부의 채무는 GDP의 두 배가 넘는 3000억 유로에 이르렀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교수는 이달 초 자유기업원 초청 강연에서 그리스 사태의 원인과 교훈에 대해 “정치권이 복지 포퓰리즘을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한 국책연구원장에게 하치스 교수는 “한국도 그리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복지 포퓰리즘은 순간에는 달콤하다. 국가에서 의료비도, 교육비도, 급식비도 내준다고 하는 데 마다할 국민은 없다. 정치권은 복지정책을 남발하고 국민은 달콤한 유혹을 즐기며 표를 주는 사이에 국가 재정은 파탄이 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돈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부담해야 한다. 갈수록 복지 지출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 한국이 그리스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