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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임금 95%를 퇴직연금으로 받는 그리스 국민

입력 | 2011-09-19 03:00:00


신치영 경제부 차장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는 일단 잦아들었지만 그리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독일 국민은 여전히 그리스 지원에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하며 독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핀란드는 그리스 지원의 대가로 담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등 유로존 회원국들은 그리스 지원에 대한 입장이 제각각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각종 긴축 정책을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고통 분담을 거부하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는 그리스가 자신의 운명을 이처럼 이웃국가의 손에 맡기게 된 원인을 많은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복지 포퓰리즘과 ‘적자 경제(deficit economy)’에서 찾는다. 그리스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경제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1980, 90년대 사회주의 정부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과다하게 팽창했고 공무원과 노조는 높은 임금상승률 잔치를 벌이면서 재정적자가 쌓여갔다. 1995∼2008년 그리스의 공무원 1인당 연평균 실질임금상승률은 유로지역 평균의 두 배에 달했고 공공부문의 과잉인력은 25%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회보장 지출을 늘렸다. 지난해 그리스의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8.0%로, 미국(7.0%) 캐나다(9.2%)의 두 배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2%보다도 훨씬 높았다. 또 그리스 공적연금의 임금 보전 비율은 95%나 된다. 퇴직 후 받는 공적연금이 퇴직 직전 임금의 95%라는 얘기다. 유로존에서도 가장 높다. 독일이 36%, 프랑스가 50%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의 공적연금이 얼마나 후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공적연금만으로 퇴직 직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리스 국민은 저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노후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버는 돈을 먹고 마시는 데 썼다. 낮은 저축률 때문에 민간 기업들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고 정부도 외채로 재정적자를 메워야 했다.

‘공짜 점심’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의 대외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스 정부의 채무는 GDP의 두 배가 넘는 3000억 유로에 이르렀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교수는 이달 초 자유기업원 초청 강연에서 그리스 사태의 원인과 교훈에 대해 “정치권이 복지 포퓰리즘을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한 국책연구원장에게 하치스 교수는 “한국도 그리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복지 포퓰리즘은 순간에는 달콤하다. 국가에서 의료비도, 교육비도, 급식비도 내준다고 하는 데 마다할 국민은 없다. 정치권은 복지정책을 남발하고 국민은 달콤한 유혹을 즐기며 표를 주는 사이에 국가 재정은 파탄이 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돈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부담해야 한다. 갈수록 복지 지출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 한국이 그리스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