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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행복한 사회]엄마=교육 전문가?

입력 | 2011-09-19 03:00:00

아이 진학대학이 엄마 성적표… 스트레스 고3보다 더 해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평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엄마들이 삼삼오오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이미 흔한 풍경이다. “수학은 OO학원이 좋다더라.” “1등 하는 애가 △△학원에 다닌다더라.”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교육에 관한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 사회는 엄마들에게 교육전문가가 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가 어떤 대학에 가느냐가 엄마 인생의 성적표가 된 지금, 고급 교육정보를 얻으려는 엄마들의 헌신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
○ 아이 교육에 ‘다걸기(올인)’하는 엄마들

김모 씨(44·서울 영등포구)는 ‘고3 엄마’다. 김 씨 자신의 생활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루 일정은 모두 딸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딸아이의 성적이 늘 맘에 걸린다. 현재 성적으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할 것 같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대학 홈페이지를 찾는다. 논술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수시전형을 찾아 꼼꼼히 메모한다.

이어 신문에서 입시정보와 사설, 칼럼을 찾아 오린다. 이렇게 해 두면 아이가 쉴 때 볼 수 있다. 10분도 아까운 때가 아닌가. 학원 입시 설명회에도 수시로 간다. 나름 정보를 얻었지만 후회와 죄책감이 앞선다.

“설명회를 듣다 보면 우리 아이만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어릴 때부터 뒷받침해줄걸…. 그랬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나았겠죠.”

김 씨는 지난해 직장을 그만뒀다. 딸의 대학, 나아가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김 씨의 주변에 있는 많은 워킹맘도 버티고 버티다 고3 때 무너졌단다. 지금 ‘올인’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못해준 것을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다.

비단 고3 엄마뿐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엄마들은 ‘나 죽었소’ 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원, 학원에서 집으로 아이를 나르는 운전기사, 학원을 돌며 입시 정보를 얻고 계획을 세우는 전략가, 학원 스케줄을 짜는 매니저가 돼야 한다.

교육전문가를 강요받는 엄마들의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다.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인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하러 오는 엄마들이 오히려 상담을 받아야 할 때가 더 많다”며 “그런 엄마 대부분은 심한 스트레스로 강박감과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 사교육비에 집안 기둥 흔들린다

김 씨는 매달 사교육비로 200만 원 정도를 쓴다. 군인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김 씨는 1000만 원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고3만 그런 게 아니다.

이모 씨(43·서울 양천구 목동)는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학원과 과외를 6개 시킨다. 영어 수학 과학 단과학원과 영어회화 국어 수학 개인 과외….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아이를 바쁘게 돌리진 않았다. 하지만 1학기 중간고사에서 100등 아래로 떨어진 성적표를 받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씨는 아들을 초등학교 4, 5학년까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영어라도 건지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뒤 영어 성적은 신통찮았다. 연수기간에 뒤처진 수학과 국어는 더욱 문제였다. 학원만으로 모자라 과외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들어가는 한 달 사교육비는 총 110만 원. 하지만 이 씨는 다른 목동 엄마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안됐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나중에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갈 정도로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해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요.”

교육과학기술부가 통계청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지난해 국내 사교육비는 20조8718억 원. 1인당 매달 24만 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조사결과에 학생과 학부모,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같은 기간 서울시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25개 자치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 원이다. 강남구 50만 원, 서초구 49만 원, 양천구 47만 원, 송파구 40만 원 등이다.

○ 출산까지 꺼리게 하는 교육부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꽤 있다.

직장생활 12년 차인 한모 씨(38·서울 용산구 이태원동)는 휴일인 토요일이 가장 바쁘다. 6세 된 아들과 함께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오전 10시 반 압구정동 수학학원을 시작으로 미술학원, 수영장을 거쳐 집에 들어오면 오후 6시가 넘는다.

평일에는 영어유치원과 한글 과외, 축구교실에 보낸다. 아이를 직접 챙기지는 못하지만 신경은 여전히 쓰인다. 한 씨는 일을 하다가 틈틈이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교육 정보를 챙긴다.

매달 사교육비는 200만 원 정도. 월급의 상당 부분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투자하는 셈이다. 이러니 사교육비 대려고 회사 다닌다는 농담에 웃을 수 없다. 은근히 둘째를 원하는 남편에게는 꿈도 꾸지 말라고 면박을 준다.

“하나인데도 교육 문제로 정신이 없어요. 신경 써야 할 게 정말 많다고요. 둘이 되면 더 심해지지 않겠어요? 우리가 그러지 않으려 해도 주변에서 다들 시키는데…. 둘째는 엄두가 안 나요.”

한국교육개발원이 올해 만 3세 이상의 미취학 아동이 있는 전국 2527가구를 조사한 결과 42.7%(1080가구)는 교육비 부담으로 둘째나 셋째 아이 출산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엄마들의 교육 부담을 덜어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공교육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부모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부담을 부모가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추가 출산을 막는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 사교육없는세상 학부모 강좌 ▼

‘남들이 하니까….’ ‘불안해서….’

자녀들 사교육비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는 엄마들은 공포에 가득 차 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소문에 휘둘리기도 쉽다. 그러나 사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꽤 많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반박을 들어보자.

윤지희 공동대표는 “사교육을 많이 시키고 성적이 오르면 명문대에 입학하고 좋은 일자리에 진입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학원 뺑뺑이’에 대해 김성천 부소장은 “지금 당장의 성적, 등수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아이가 10년, 20년 후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꿈을 키워줘야 한다. 공부는 진로, 진학과 연결돼야 한다”고 비판한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조기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교수는 “외국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기 영어교육을 맹신하는데, 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외국어 구사력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결정적 시기’는 없다는 얘기다. 이 단체는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 달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9시에 ‘2011 등대지기학교’ 강좌를 진행한다.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이나 녹화방송을 볼 수도 있다. 신청은 30일까지 홈페이지(www.noworry.kr)를 통해 하면 된다. 지난해 강의를 들었던 정모 씨는 “엄마는 자기 욕심이 아닌, 아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등학생인 아이를 편하게 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팀원 정효진(산업부) 구가인(경제부) 신나리(국제부) 이새샘(사회부)
우경임 한우신 남윤서 최예나(교육복지부) 곽민영(문화부)

::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  ::

강지원 변호사
김미경 더블유 인사이츠 대표
김행미 KB국민은행 강동지역 본부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이복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전재희 국회의원·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주원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정이현 소설가
조복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최성남 글로벌어린이재단 뉴욕 회장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 이런 엄마를 찾습니다 ::

육아와 교육, 경제적 문제 등으로 출산을 꺼리는 엄마, 그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이 더 크다는 엄마…. 여러분의 사연이 담긴 제보를 받습니다. 시리즈에 대한 의견도 환영합니다. happymom@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