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무대★★★★☆ 대본★★★☆ 연출★★★★ 노래★★★★
조선시대 궁궐 안 얘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올해 경희궁 내에 무대를 얻어 ‘날개’를 달았다. 극단 죽도록 달린다 제공
사각형의 무대는 숭정전 돌계단과 정문인 흥화문 사이에 들어섰다. 가을 기운을 머금은 서늘한 바람이 때로 세차게 궁내를 훑었다. 관객의 머리칼이 흩날릴 때면 무대 위 궁녀들의 치맛자락, 임금의 장포 자락이 함께 펄럭였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었다. 궁궐 전체가 무대였다.
중전(박혜나)이 중궁전 나인 자숙(이지숙)을 앉혀 놓고 술잔을 기울이던 조선 왕실의 어느 여름밤. 갑자기 왕세자가 실종돼 궁궐이 발칵 뒤집힌다. 감찰 상궁인 최상궁(태국희)은 그날 밤 동궁 숙직인데도 중궁전을 기웃거리던 내관 구동(강하늘)을 용의자로 의심한다. 조사 과정에서 왕과 중전, 상궁과 내관, 자숙과 구동 등 인물들의 얽힌 관계가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출연진의 가창력이 훌륭했다. 특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최상궁 역 태국희 씨의 샤우팅 창법은 가을바람을 뚫고 관객의 가슴마저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극 막판. 자숙과 구동의 사이를 알게 된 왕(이상현)이 질투심에 날뛰면서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잠깐. 왕세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가장 중요했던 왕세자 실종 사건은 일련의 부차적인 사건들 속에서 저 멀리 밀려나 있었던 것. ‘본질은 무엇인가’는 이 작품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막판 굵어진 빗줄기로 뮤지컬은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중단됐지만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뜨거웠다. 궁 밖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의 휘황찬란한 LED 간판들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갈채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