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터지기 직전에도 ‘담화’… 테러범 “지겨워 자수”총선-대선 앞두고 방송-공연계 개그 소재로 각광
KBS2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협박한 시간이 1분 남았다. 비상대책위원들이 시계를 보며채근하지만 대통령은 범인에 대한 담화를 읽느라 바쁘다. 듣다 못한 범인은 차라리 자수를 택한다. KBS TV 화면 촬영
마침내 시작된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범인 여러분,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는 치솟고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과 유럽 재정 위기 속에….” 지겨운 연설에 못 이겨 자수하겠다고 나선 범인. 하지만 경찰 간부가 말린다. “대통령 말씀 다 듣고 자수해!”(KBS2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
고인이 된 개그맨 김형곤이 기업 회장으로 나와 정계를 풍자했던 ‘회장님 회장님’ 이후 한국에서는 정치 코미디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방송과 공연계에서는 정치 코미디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사람들은 “쓴 웃음이라도 내뱉게 만든다”(정남현 씨)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엎는 설정이 상쾌 통쾌 시원하다”(김용규 씨)며 반기고 있다.
개그작가 장덕균 씨는 “김형곤 씨 이후로도 대통령 아들을 소재로 한 코미디가 나왔지만 방송사 간부진이 불편해하면서 오래가지 못했다”며 정치 코미디가 고개를 드는 이유를 “정치 개그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폭이 넓어진 가운데 정권 말기로 가면서 코미디 소재로 삼을 만한 여러 사건이 터지고 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그 프로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소재가 필요해져 ‘정치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방송계의 개그 프로는 개콘이 독주하는 가운데 개콘의 김석현 PD가 CJ E&M으로 이적해 만든 ‘코미디 빅 리그’가 17일 방송을 시작했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다음 달쯤 방송을 재개할 예정이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