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盧 최측근서 YS정부 집권당 대표까지

충북 제천 출신의 이 전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14기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이다. 1980년 신군부의 정권 장악 후 준장으로 예편해 5공화국 초기 ‘서슬 퍼런’ 사회정화위원장을 맡았다.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2∼14대 고향에서 내리 당선돼 4선 의원을 지냈다. 민정계 실세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3차례나 집권당 사무총장을 맡았다. 1987년 대선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으로 6공화국 탄생에 기여했다.
이 때문에 신군부 출신 5, 6공 핵심인사이면서도 문민정부를 내세운 YS 정부에서까지 국회부의장과 집권당 대표로 중용됐다. 이 전 의원은 철두철미한 성격의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다. 정실에 치우치지 않아 정부와 당의 요직에 있을 때 사적인 청탁이나 민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표정이 없고 말수가 적은 데다 늘 흐트러지지 않는 몸가짐으로 부하 직원이나 당직자들에게는 ‘저승사자’로 불렸다.
‘6공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두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한 유일한 여권 인사로 기억된다.
고인은 5·18특별법 제정과 두 전직 대통령 구속 후 정계를 은퇴했다. 정계를 떠난 뒤에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고 알려질 정도로 처신이 깔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 씨와 아들 재용, 딸 서영 씨, 사위 권기연 에스에스모터스 대표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7시 반. 02 2258-5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