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오세훈 선택의 파편 누가 맞을까
오세훈은 정권의 이해보다 자신의 명분과 정치적 장래를 먼저 생각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그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몇 번이고 바뀔 것이다. 당장 내달 선거의 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세상 사람의 입에 오르리라.
국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서 출발한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작년 지방선거에서 패퇴한 것을 중간선거 여당 필패론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 첫째는 민심을 많이 잃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전국 곳곳에서 공천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공천 난맥상은 이권집단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 왔다.
더 원초적인 잘못은 ‘대한민국을 지켜내라’는 국민의 염원이 정권을 만들어주었음에도, 자신들이 잘나서 스스로 창출한 정권인 양 거들먹거리며 권력을 전리품(戰利品)처럼 나눠 갖기에 급급한 데 있었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는 입술만 적시는 구호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을 보면서, 그리고 첫 조각(組閣)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우리들의 정부’가 아니라 ‘너희들의 정권’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결정판은 2008년 총선 공천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뒤인 2007년 9월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는 “내년 총선 공천은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계량화된 근거에 따라 하겠다”며 ‘지역별 대선 득표율’을 현역의원 공천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 공천에 깊이 관여한 이방호를 비롯한 친이(친이명박) 세력은 그런 기준과는 상관없이 친박(친박근혜) 및 잠재적 경쟁자들을 솎아내고 학맥 관리까지 자의적으로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도(無道)한 공천은 친박 무소속의 대거 당선과 당내 친박의 야당화(野黨化)를 불렀고, 결국 이명박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 친박의 복수는 한나라당이 ‘덩치만 큰 불임여당’으로 전락하는 요인도 됐다.
작년 6·2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과 범좌파는 오직 이기기 위해 조폭이나 양아치 같은 방식의 후보 단일화극을 벌여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더 한심한 쪽은 우파후보 난립을 부추기기까지 해 좌파 교육감을 양산시킨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려 올해 4·27 재·보선에서 김빠진 맥주 내놓듯이 공천 파행을 빚어 패인(敗因)을 추가했다.
이제 한나라당 운명의 중심에는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가 서게 됐다. 박근혜가 피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는 시효는 끝났다. 본인이야 억울할 수 있겠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태도부터 투표 결과까지 그의 정치적 장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유승민과 박근혜에게 불만이 있었던 오세훈의 선택은 안철수가 정치 무대에 화려한 예광탄(曳光彈)을 쏘아 올리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안철수는 박원순을 띄워주고 잠수했으나 박근혜를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안철수를 기억에서 다시 꺼내려 할 것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포옹은 풀어야 할 미스터리를 남겼지만 어쨌건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된다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원순 후방 효과에 더 고전할 것이다. 박원순의 집념과 근면을 따라갈 범우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범좌파에 물적 인적으로 많이 투자한 박원순의 위력이 ‘대한민국 넘버 2 선출직’에서 제도적 조직적으로 발휘될 때 우리 사회와 정치 지형은 더 빠르게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
덧붙이자면 일부 친박은 박근혜를 큰 인물로 보이게 하는 ‘측근 효과’를 높이기는커녕 국민과의 소통에서 오히려 실점을 한다. 어떤 친박은 더 겸허하고 유연하라는 충고에 “나는 (정치를) 내 꼴리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니, 지지 세력에 대한 배신이요 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책임한 태도다. 그런 행태는 범우파의 갈등과 분열을 재촉하고 박근혜의 장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배인준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