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 한국대표
흘러내린 토석과 유목이 하부 배수로를 막았다는 것도 산사태가 날 때마다 지적된 문제점이다. 필자가 작년 9월 21일 우면산 산사태 발생 후 서울시에 제출한 정책제안서에서도 지적한 내용인데 지금까지 방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중호우도 원인이라는데, 거의 같은 수준의 집중호우가 근래 서울에 있었다. 작년 우면산 산사태와 2001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산사태 때도 그랬는데 그 후 어떤 호우대책을 세웠다는 말인가.
합동조사단은 우면산 지질이 유별난 것처럼 설명했지만 남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평범한 편마암 지질일 뿐이다. 핵심은 우면산 인근에 수많은 주택을 건설하면서 거기에 걸맞은 산사태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사전에 우면산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이 수차례 경고했지만 대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면산 산사태의 원인 발표는 여러 차례 미루며 사고 발생 한달 반 뒤에 하면서도 복구공사는 수주 전부터 했는데 이해가 안 된다. 현장 증거가 훼손된 것이다. 원인이 제대로 안 밝혀지면 대책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지난해 우면산 덕우암 휴게소 계곡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4억 원을 들여 복구한 부분이 이번에 또다시 붕괴돼 피해를 키운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내년 5월까지 387억 원을 들여 복구한다는데 대도시 산사태를 산골 산사태 복구처럼 서두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복구보다는 원인을 철저히 파악한 후 과학적인 자료에 근거해 붕괴가 안 된 지역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예방대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내년 말까지 산사태 위험요인을 일제조사하기로 했다. 서울의 산사태 위험 지역, 옹벽, 석축, 절개지가 10만 개로 추정되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6월 29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 산사태부터 7월 27일 우면산과 강원 춘천 산사태까지 한 달간 전국에서 58명이 산사태로 사망했다. 4명이 사망한 경남 밀양 산사태도 천재라고 발표했다. 필자가 7월 초부터 신문과 방송에서 산사태 원인 규명은 국내에서 대부분 천재로 결론 나는 게 관행이므로 객관적으로 제대로 밝히려면 국제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수차례 주장한 것은 지난 20년간 국내 산사태 발생 후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을 보면서 국내에서 제대로 밝히기 어렵다는 걸 통감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로 산사태가 세계적으로 빈발하므로 국제적인 공동 협력을 위하여 작년 말에 3개 국제학회에서 6명씩, 총 18명(13개 국가)의 산사태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를 발족했다. 전국적으로 5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사태 원인을 규명하려면 국회에서 ‘산사태 원인 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산사태 전문가들에게 자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산사태로 생명과 재산을 빼앗기고도 아무런 하소연도 못하는 억울한 국민들의 원통함을 씻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 한국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