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무책임한 불안 조장
①토털 블랙아웃?
실제로는 가능성이 없다. 전력예비율이 바닥을 쳐 부하에 비해 발전출력이 모자라면 발전기는 힘이 부쳐 정해진 속도(초당 60회)만큼 돌지 못하고 주파수가 떨어진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어느 순간 전국의 모든 발전기가 멈춘다. 오르막길에서 변속기어를 낮춰주지 않으면 엔진의 힘이 모자라 자동차 시동이 꺼지는 것과 같은 원리. 이렇게 되면 전국적인 정전 상태인 ‘블랙아웃’에 빠진다. 이 경우 전력공급을 완전 정상화하는 데 최소 2, 3일이 걸린다.
결론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거래소는 물론이고 UFR까지 작동을 멈추는 등 전력통제체계가 완전히 와해된다면 모를까 전기가 모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블랙아웃이 되고 세상이 멈추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우(杞憂)다.
②삼성전자도 멈출 수 있다고?
포스코 삼성전자 같은 국가기간산업은 한전의 전력차단 순위에서 마지막 두 번째로 분류돼 있다. 가장 먼저 일반주택 저층아파트 서비스업의 전력이 끊어지고, 다음으로 고층아파트 상업업무시설 경공업공단 전기가 끊어진다. 세 번째가 삼성전자 등 중요 고객이며, 정부행정관서 군부대 통신 언론 전철 상수도 등은 최후의 순간까지 전력이 공급된다. 복구는 이와 역순. 따라서 전력공급체계가 완전히 와해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기간산업의 전력은 끊어지지 않는다.
③전력사정 갈수록 나빠지나
절전 캠페인이 필요하다
길게는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바꾸고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불합리한 요금할인체계를 바꾸고 전기요금을 수요조절 효과가 있을 정도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물가를 고려할 때 요금을 갑자기 크게 올리기는 힘들다. 문제의 2, 3년 기간에는 절약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절전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다. 적어도 에어컨 켜놓고 카디건 껴입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④전력산업 구조 개편 탓인가
정전 사태 후 발전노조 등을 중심으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 발전소가 발전회사로 독립하면서 옛 한전 급전지령소가 전력거래소로 분리됨에 따라 전력에 대한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관리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배경은 짐작이 가지만 구조 개편과 이번 정전 사이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