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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허승호]토털 블랙아웃說, 진실과 거짓

입력 | 2011-09-22 03:00:00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15일 정전으로 큰 혼란이 있었다. 피해가 컸고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이를 틈타 터무니없는 과장과 억측도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일부 매체의 경우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근거 없고 불필요한 불안을 부추기는 것 같아 우려스러워 이 글을 쓴다.

무책임한 불안 조장

①토털 블랙아웃?

실제로는 가능성이 없다. 전력예비율이 바닥을 쳐 부하에 비해 발전출력이 모자라면 발전기는 힘이 부쳐 정해진 속도(초당 60회)만큼 돌지 못하고 주파수가 떨어진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어느 순간 전국의 모든 발전기가 멈춘다. 오르막길에서 변속기어를 낮춰주지 않으면 엔진의 힘이 모자라 자동차 시동이 꺼지는 것과 같은 원리. 이렇게 되면 전국적인 정전 상태인 ‘블랙아웃’에 빠진다. 이 경우 전력공급을 완전 정상화하는 데 최소 2, 3일이 걸린다.

하지만 주파수가 59.0Hz(헤르츠)까지 떨어지면 각 변전소에 있는 저주파계전기(UFR)의 작동으로 자동적으로 부하가 차단된다. 부분적인 강제 단전을 통해 블랙아웃을 예방하는 장치다. 물론 이 지경에 이르기 전에 전력거래소와 한전 직원들이 개입해 부분 정전을 실시한다. UFR 단전은 범위가 넓고 피해가 크기 때문에 손으로 사전조치를 취하는 것. 이번 정전의 경우 예비전력이 24만 kW로 떨어지고 주파수가 59.25Hz에 이르자 전국적으로 순환정전을 실시했다. UFR는 거래소 인력조차 손을 쓸 수 없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최후의 보루로 만들어 놓은 장치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거래소는 물론이고 UFR까지 작동을 멈추는 등 전력통제체계가 완전히 와해된다면 모를까 전기가 모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블랙아웃이 되고 세상이 멈추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우(杞憂)다.

②삼성전자도 멈출 수 있다고?

포스코 삼성전자 같은 국가기간산업은 한전의 전력차단 순위에서 마지막 두 번째로 분류돼 있다. 가장 먼저 일반주택 저층아파트 서비스업의 전력이 끊어지고, 다음으로 고층아파트 상업업무시설 경공업공단 전기가 끊어진다. 세 번째가 삼성전자 등 중요 고객이며, 정부행정관서 군부대 통신 언론 전철 상수도 등은 최후의 순간까지 전력이 공급된다. 복구는 이와 역순. 따라서 전력공급체계가 완전히 와해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기간산업의 전력은 끊어지지 않는다.

③전력사정 갈수록 나빠지나

단기적으로 맞고 중장기적으로는 틀렸다. 내년부터 신월성 1호기 등 현재 건설 중인 발전소들이 속속 가동되지만 최저 설비예비율은 올해 4.1%, 내년 4.8%, 2013년 3.7%로 계속 불안한 상태다. 2014년에라야 6.6%로 올라서면서 한숨 돌리게 된다. 한편 예비율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도 발전원가가 비싸져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거나 향후 2년간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다.

절전 캠페인이 필요하다

길게는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바꾸고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불합리한 요금할인체계를 바꾸고 전기요금을 수요조절 효과가 있을 정도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물가를 고려할 때 요금을 갑자기 크게 올리기는 힘들다. 문제의 2, 3년 기간에는 절약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절전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다. 적어도 에어컨 켜놓고 카디건 껴입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④전력산업 구조 개편 탓인가

정전 사태 후 발전노조 등을 중심으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각 발전소가 발전회사로 독립하면서 옛 한전 급전지령소가 전력거래소로 분리됨에 따라 전력에 대한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관리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배경은 짐작이 가지만 구조 개편과 이번 정전 사이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