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상토론 빈번했지만 결론은 ‘보수’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과거사 판결 정리, 공판중심주의 정착, 대법원 기수 파괴 등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성과와 함께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동아일보DB
○ 전쟁터 같았던 전원합의체
이 대법원장은 취임 초기 거친 말투로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해 매우 강하고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서 이 대법원장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평소 점잖고 과묵해 보이는 대법관들은 전원합의 때만 되면 인생을 건 듯 결사적으로 다퉜지만 도리어 이 대법원장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이 대법원장이 6년간 전원합의에서 100% 다수 의견을 지지한 것에 대해 “결코 관행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제시하기 위해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 제청했지만 이 대법원장 자신의 생각이 항상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같지는 않았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 의견에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동조하지 않도록 대법관들을 설득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대법관 다양성이 격렬한 토론 유발
이 대법원장이 이끄는 전원합의에서 전례 없이 격렬한 논쟁이 잦았던 것은 다양한 대법관 구성 덕분이다. 이 대법원장 때는 사법 사상 처음으로 2명의 여성 대법관이 있었다. 여성인 김영란 전 대법관(국민권익위원장)과 전수안 대법관 모두 주로 소수 의견의 대표주자였다. 이 대법원장 임기 내내 폐지 논란에 휩싸였던 우리법연구회 출신 박시환 대법관도 국가보안법 사건 등 논란이 뜨거웠던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이끌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양창수 대법관이 교수 출신으론 처음 대법원에 입성했다.
○ 대립과 갈등의 용광로, 전원합의체
본보의 분석 결과 ‘이용훈 전원합의체’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일수록 격한 대립과 갈등, 논란을 통해 각자의 의견이 섞이고 녹아드는 용광로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실천연대 이적단체 사건 등 국가보안법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사건,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 숱한 논란 속에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던 사건들이 전원합의에서 모두 보수적으로 결론이 났다.
○ 6년 새 사법부 크게 변화
이 대법원장은 은둔과 침묵 이미지가 굳어진 전임자들과 달리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사법정책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는 공판중심주의 확립이다. 법정에서 나온 증거와 증언만을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는 원래 형사재판의 대원칙이었지만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를 강하게 추진한 결과 검찰의 반발이 커진 점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또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국회 폭력 사건 1심 무죄’ 등 하급심의 튀는 판결이 이어지면서 법원 판결의 신뢰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튀는 판결 논란 이후 국회가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등 법원이 외부의 거센 압력을 받기도 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