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 김영란 대법관의 취임은 대법관 구성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최초 여성 대법관인 김 대법관은 사법시험 20회로 김용담 당시 대법관보다 9기수 아래였다. 40대의 나이로 대법관이 된 것은 1988년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이후 16년 만의 일이었다. 뒤이어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이 차례로 임명되면서 엄격한 서열 속에서 서울대 법학과 출신의 남성 대법관이 지배하던 대법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원합의체에서 진보적이거나 소수자 편에서 목소리를 내 ‘대법원의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5명의 대법관이 대표적으로 한목소리를 낸 사건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이다. 이들은 법해석을 두고 논란이 컸던 국보법의 주요 개념과 관련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독일에서 거주하다 여러 차례 방북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김지형 전수안 박시환 대법관은 “외국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가는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국보법상) 탈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에서도 “(이적단체를 판단할 때는) 단순한 개연성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에 구체적으로 해악을 미칠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한다”며 판단 기준을 엄격하게 봤다. 남북공동실천연대 사건에서는 박시환 대법관이 “북한은 실질적으로 국가와 다름없는 체제와 구조를 갖추고 대한민국 역시 북한을 여느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상대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북한을 대한민국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단체라고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광고의 종교교육 사건에서는 달랐다. 학교의 종교교육에 반발한 강의석 씨에 대한 징계처분에 대해 이들은 다른 대법관들과 함께 8 대 5로 다수를 이뤄 종교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기본권을 고려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징계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영란 대법관의 후임인 이인복 대법관도 주요 사건마다 소수 의견을 냈다. 이 대법관은 안기부 X파일 보도사건과 철도노조 파업사건에서 다른 4명의 대법관과 함께 “재벌(삼성) 관계자와 언론사 사주(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대화한 내용을 보도한 것은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보도로 얻어지는 이익이 더 크다”는 의견을 냈다. 또 파업을 주도해 기소된 철도노조 위원장의 상고심 판결에서도 “단순파업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대법원 전원합의체 ::
대한민국 사법부 최상급 법원인 대법원의 최고 판결 기구. 재판장인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다수결로 사건에 대한 확정 판결을 내린다. 전체 대법관의 과반수(7명 이상)가 동의하는 의견을 다수 의견이라고 하고 이것이 판결 내용(주문)이 된다. 이에 반하는 의견을 소수 의견이라고 하는데 법적인 효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