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빙성ㆍ대가성 관건, 파괴력 예단 힘들어
검찰이 신재민(53)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 거액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49) SLS그룹 회장을 23일 전격 소환한 것은 이씨의 폭로로 인한 사회적 파장의 확산을 막고 조기에 의혹을 규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식 수사 착수를 위해 시민단체나 당사자의 고발을 기다렸다가는 그 사이에 이회장이 제2, 제3의 의혹을 폭로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21일 이씨가 일부 언론을 통해 금품제공 의혹을 폭로했을 때만 해도 신빙성에 의문을 두는 반응을 보이면서 수사 착수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전날까지 연이틀 폭로가 이어지고 신 전 차관 외에도 박영준(51) 전 국무총리실 차장, 2008년 당시 청와대 비서관 K씨, 행정관 L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자 '더 이상 방관할 순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우선 주목하는 부분은 이씨 진술의 신빙성이다.
신 전 차관에게 수십억대 금품을 제공했다는 보도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우선 상식에 부합하는지 봐야 한다. 신빙성을 들여다봐야 할 게 많아 보인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씨로부터 미화 2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진의장 전 통영시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공교롭게도 이날 창원지법에서 무죄로 선고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었다.
이씨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증 공개를 거부했다. 신 전 차관이 SLS그룹 해외법인의 법인카드를 쓰고 사인을 한 전표가 있지만 "검찰에서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일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신 전 차관에 대한 소환 조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씨가 명절 때 상품권을 줬다고 추가로 폭로한 청와대 인사도 신 전 차관이 연결고리였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반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폭로 내용이 이미 언론에 상당수 보도된 만큼의혹 해소 차원이라도 당사자들을 불러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다.
신 전 차관은 이씨의 폭로에 대해 "빨리 검찰에 수사하라고 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박 전 차장은 일본 출장 중 향응을 제공했다는 주장에 대해 "일본 출장은 두 번으로 2009년 5월 한일총리회담을 수행했고 그해 11월에는 캐나다에 가기 위해 일본을 경유했을 뿐"이라며 구체적으로 해명했다.
이씨는 신 전 차관에 대해 입만 열면 "형님 아우하는 사이다. 그런 수준을 뛰어넘는 관계다"라며 대가성을 부인해왔다. 특히 "신 전 차관은 언론계 출신에 문화 쪽이고, 나는 제조업 쪽으로 비즈니스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며 직무 대가성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러나 이씨가 자신이 경영하던 SLS그룹이 워크아웃되는 상황에서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가깝다고 주장해온 신 전 차관을 통해 힘을 써줄 만한 정관계인사들에게 구명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씨가 상당히 많은 물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점에 비춰 검찰 수사과정에서 신 전 차관 등 지금까지 거명된 인사 외에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올 여지도 있어 사건의 폭발력을 쉽게 가늠하기는 아직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