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죗값은 내가…” 비극으로 끝난 저축銀 평사원 신화
투신현장 조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제일2상호저축은행 본점에서 정구행 행장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해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불법·부실대출 등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한 정부 합동수사단은 이날 오전 해당 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하고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신입행원에서 은행장까지
대전상고와 한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행장은 25년 전인 1986년 제일저축은행 장충동 본점 영업부 행원으로 입사했다. 2002년에는 자회사인 제이원저축은행(현 제일2저축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남대문, 테헤란로 지점장을 지낸 뒤 2005년 12월 대표에 올랐다. 제이원저축은행은 제일상호신용금고(현 제일저축은행)가 1999년 인수한 일은상호신용금고가 모태로, 정 행장 취임 후인 2006년 제일2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 “죗값은 제가 받겠다”며 투신
정 행장은 이날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도중 건물 6층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 행장은 투신 직전 건물 3층의 박모 이사 방에 들러 “지갑 속에 뭔가 적어뒀으니 보라”고 말한 뒤 옥상에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검찰은 2층을 압수수색 중이었다.
3층 행장실에 있던 정 행장 양복 상의에서는 “현재 매각 관련 실사를 3곳에서 하는 상태다. 실사가 정상으로 이뤄져도 영업정지 후 자력 회생한 전례가 없다 보니 기관별 협의가 제시간 안에 끝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저희도 후순위채 5000만 원 초과 예금 고객이 있다. 관계 기관의 협조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죗값은 제가 받겠다”고 자필로 쓴 편지가 발견됐다. 정 행장은 투신 직전 박 이사와의 통화에서 “매각 절차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제일2저축은행은 18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6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7개 저축은행 가운데 하나다. 정 행장이 투신자살한 23일 오전 검찰은 제일2저축은행 외에도 토마토저축은행과 프라임저축은행 등 최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7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불법대출과 대주주의 비리 등 저축은행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 잇단 악재에 심리적 압박 느낀 듯
다만 5월부터 제일저축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제일2저축은행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제일저축은행이 제일2저축은행의 매각을 추진한 데 따른 스트레스는 심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제일2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정 행장은 육군 학사장교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이었다”며 “최근 영업정지와 이날 압수수색 등 악재가 겹쳤고 25년간 관리해온 단골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견딜 수 없는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