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짧은 약발… 개장 1분만에 45원 추락 뒤 반등막판 달러 폭탄… 마감 2, 3분 앞두고 30여원 급락
○ 원-달러 환율 ‘널뛰기’
개장 전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이 1200원 선을 넘을 것으로 봤다. 전날 밤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환율이 한때 1225원까지 폭등했고 유럽과 미국 증시가 급락세를 보여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오를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개장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오전 7시 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거시정책협의회를 열고 “최근 외환시장 쏠림이 과도하다. 이를 완화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수출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시장 안정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개장과 동시에 전날 종가보다 15.2원 오르며 1195원까지 치솟자 곧바로 정부가 개입해 환율은 1분 뒤 1150원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달러를 사려는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가 유입되고 역외에서도 달러 매수세가 많아지면서 환율은 다시 급격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순매도 공세를 펼치면서 상승 압력을 가했다. 환율은 정부가 개입한 지 한 시간도 못 돼 다시 1190원대로 올라섰다.
이후 오전 10시부터 1190원대 초중반에서 눈치 보기가 이어지다 장 막판 1196원까지 오르며 다시 1200원 선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 마감 2, 3분을 앞두고 다시 외환당국이 대규모 개입에 나선 결과 30원가량 급락한 1166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환딜러들은 정부가 두 차례의 대규모 개입 외에도 환율 방어를 위해 3, 4차례 더 소규모로 개입한 것으로 본다. 정부가 이날만 35억∼40억 달러를 투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딜러는 “정부가 강한 안정화 의지를 보이며 1200원 돌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악재가 쌓여 있어 상승세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역외 달러 매수세가 강해 환율 상승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고 당국의 방어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달러 매수세가 우세한 데다 지금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경기둔화 우려도 높다”며 “1270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유럽계 탈코리아…외화 부족 우려
최근 환율 급등을 외국인이 달러를 팔면서 한국을 떠나는 신호로 분석하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달 외국인이 증시에서 4조6000억 원을 팔면서도 채권시장에선 3조8000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것을 놓고, 정부는 미국 신용등급의 강등에도 외국인이 한국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유럽계를 중심으로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금을 빼내면서 6조 원 이상이나 빠져나갔다. 글로벌 위기 상황에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에 자금을 많이 빌려줘 위기에 몰린 프랑스 자본은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한꺼번에 발을 빼 총 증권 순매도 금액이 4400억 원에 이르렀다. 대표적 조세회피지역인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외국자본들은 9월에만 32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팔았다. 단기 투자차익을 노리는 ‘핫머니’가 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보고 일단 주식을 팔아 현금화한 것이다.
외국인이 주식과 채권을 판 대금을 달러로 바꿔 본국으로 송금하는 규모가 늘면서 환율이 더 오르고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 2397억 달러에서 지난달 말 3122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이런데도 일각에선 달러가 너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 보유외환의 총액과 상관없이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는 만큼 달러 유출 동향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최근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달리 만성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외 악재가 이미 알려진 내용인데도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는 것은 미국과 유럽발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