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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보고의 미학

입력 | 2011-09-26 03:00:00


김상수 산업부 차장

“지식경제부 장관으로서 전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점이다. 낮 12시에만 통보됐어도 관계기관과 협조해서 대형기관 냉방기를 끄고 국민 여러분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15일 정전 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 뭐냐”고 묻자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좀 더 일찍 정확한 보고를 받았더라면 대규모 정전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당일 오전부터 예비전력은 400만 kW 이하로 떨어져 이상 징후를 보였다. 오후 1시 반경에는 단전 조치를 취해야 하는 위험수위인 100만 kW 이하로 내려갔다. 하지만 최 장관이 보고를 받은 것은 오후 4시경. 이미 전국 순환 단전을 시작한 지 1시간 가까이 지나서다.

전력시장 운영 규칙상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장은 지경부 장관에게 단전 조치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 전력거래소는 “지경부 실무자에게 보고하고 단전을 했다”고 하고 지경부와 한전은 “사후 통보만 받았다”고 해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보면 전력거래소가 명확한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전력거래소가 오히려 대응을 잘하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다. 매뉴얼에 얽매이지 않고 실무자의 판단으로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는 것이다. 한 전력거래소 실무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등 미국 북동부 지역 13개 주의 전력을 관할하는 미국 최대의 전력계통 운영기관인 PJM사는 ‘부하차단(전기를 끊는 것)의 경우 매니저(실무자)가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부하차단 의무와 면책에 관한 공문서를 벽면 기둥에 액자로 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 측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문제는 전력당국의 총괄 수장인 지경부 장관이 보고를 받지 못한 채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는 최고책임자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기준이 된다. 또 정부건 기업이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수 전제조건이다. 일본의 컨설턴트 이토후지 마사시는 저서 ‘보고 잘하는 법’에서 ‘안 좋은 일일수록 숨기지 말고 윗사람에게 빨리 보고하라’고 했다. 정전 당일 오전부터 여러 가지 나쁜 징후가 발생했음에도 전력거래소가 지경부에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은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지경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전력 차단의 책임을 지는 전력거래소 급전소장이 ‘핫라인’ 없이 장관과 통화가 안 돼 쩔쩔맨 모습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윗사람에게 보고를 하면 대부분 이와 관련된 지시가 떨어지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보고를 꺼리지만 책임자들은 보고에 목말라한다. 중요한 정보 보고일수록 더욱 그렇다. 올 초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내가 우리 회사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신문을 보고 뒤늦게 알아서야 되겠느냐”며 신속한 정보 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임원들을 질책한 적도 있다.

신속, 정확한 보고는 시간은 반으로 줄여주고 효과는 두 배로 늘린다. 이번 정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