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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를 들고]자궁경부암, 국가가 나서 예방접종을

입력 | 2011-09-26 03:00:00


산부인과에서 일하다 보면 자궁 속에 작은 생명을 품고 오는 예비 엄마들의 평안한 모습과 자궁경부암이나 난소암 등으로 인해 근심어린 얼굴이 진료실 창에 교차한다.

얼마 전 26세의 미혼 여성 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생리 외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규칙적 출혈이 계속돼 병원을 찾은 환자였다.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 2기였다. 이미 병이 한창 진행된 상태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통해 환자의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자궁을 적출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미래를 생각해 자궁 적출만은 피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성만의 특권을 잃은 환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문제는 앞으로 이 환자와 같은 ‘예비 불임 여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성풍속도는 조기 성경험 쪽으로 바뀌었는데 개인의 대비와 사회적 대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의 문턱은 우리나라 여성에게 아직도 높다. 그래서 자궁경부암 조기발견과 백신접종이라는 대비 수단이 있는데도 이용하지 않는다.

자궁경부암에서 백신은 1차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 이 백신만 맞아도 암에 걸릴 확률이 10%대로 떨어진다. 하지만 여성들은 백신접종을 꺼린다. 올해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여성단체 회원들과 통화한 적이 있는데 ‘뭘 그런 것 갖고 얘기하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대표적인 여성암 중 하나인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의해 발병된다.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생리 이외 출혈이나 통증이 생겨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HPV 백신은 2008년 노벨상을 수상한 인류의 발명품이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성경험이 있는 20대 이상 여성이라면 이 백신을 맞는 것이 안전하다. 당장 아프지 않은 암에 대해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저소득가정과 소외계층의 경우 40만∼60만 원가량 드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 사업이 필요하다. 눈을 돌려 이웃국가인 일본과 대만만 보더라도 벌써 예방사업이 뿌리를 내렸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작년부터 백신보조금을 지급해 매년 60만 명의 중고교 여학생들이 혜택을 본다. 대만 역시 작년부터 저소득가정이나 섬 지역에 거주하는 10대 소녀들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로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자궁경부암 치료에 700억 원 이상을 쓴다. 백신으로 막았다면 이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든다. 백신으로 막지 못한다면 조기검진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조기검진과 적극적인 치료는 2, 3차 방패막이다.

여성의 몸은 생명의 근원이자 한 가정의 행복 그 자체이다. 여성의 건강이 무너진다면 가정의 행복, 사회의 행복을 지킬 수 없다. 여성의 건강을 위한 복지행정이야말로 정부가 집중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다.

박종섭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