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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 답한다]Q: ‘연명치료 거부’ 주로 가족들이 나서는데…

입력 | 2011-09-28 03:00:00

A:죽음준비 교육 등 평소 대비해야




《많은 말기암 환자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환자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가족이 대신 선택하게 된다. 환자 자신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가족이 연명치료를 거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윤리적 문제는 없을까.》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팀이 올해 2월에서 7월까지 내과에 입원해 암으로 사망한 172명을 분석하니 10명 중 9명가량(89.5%)이 대표적인 연명치료인 심폐소생술을 거부했다. 사전의료 의향서가 도입되면서 이처럼 연명치료 거부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사전의료 의향서의 99%는 환자 본인이 아니라 환자 가족이 작성했다. 의향서 작성 시점도 대부분 임종 1주일 전 무렵. 환자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맬 때가 돼서야 연명치료 거부를 환자 대신 가족이 결정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 환자에게 병의 진전 상태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환자 본인은 자신의 임종을 모른 채 죽는다.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 EIU에 따르면,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은 주요 40개국 중 32위의 최하위권으로 평가됐다. 임종 직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로, 자살대국인 일본을 넘어섰다. 호스피스 이용률도 싱가포르 85%, 홍콩 65%이지만 우리는 임종 암환자 중 6%만 호스피스의 보살핌을 받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환자 본인이 의식이 분명할 때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죽음이해 부족, 죽음준비교육의 부재와 관련된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죽음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육체만의 존재인가. 죽으면 다 끝나는가. 전국의 의과대에 죽음을 가르치는 관련 교과목이 개설돼 있는가. 생사학(生死學)을 연구하고 죽음준비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과연 있는가.

심폐사와 뇌사를 중심으로 죽음을 이해하는 의료현장에서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심폐사와 뇌사는 의학적 죽음이해, 혹은 죽음 판정의 의학적 기준뿐이지 결코 죽음의 정의(定義)가 될 수 없다. 성경과 불경에서도 인간이 육체만의 존재, 죽으면 다 끝난다고 말한 곳이 한 번도 없다. 생사학을 창시했던 퀴블러로스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육체적·사회적·정신적·영적의 4가지 측면에서 건강을 말하고 있으므로, 죽음도 이 4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생사관 정립을 외면하고 육체의 죽음, 연명치료 중단 여부에 초점을 맞춘 채 의학적 법률적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생사학연구소장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학교와 사회에서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해 바람직한 생사관 정립과 성숙한 임종방식을 확산하고 호스피스 활성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또 사전의료 의향서에 동의하는 사람은 평소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죽음의 이해와 임종방식의 성숙을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과 사회제도 정비를 차분히,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시작되지 않으면, 삶의 질과 행복 만족도 향상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생사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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