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소니는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주식회사 일본’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1990년 미국 설문업체 랜도는 코카콜라에 이어 소니를 세계 2위의 브랜드파워 기업으로 선정했다. 삼성전자가 이런 소니를 추월한 것은 세계 기업사에 남을 사건이다.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란 책에서 소니 추락의 중요한 근거로 2005년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전자에 역전당한 것을 꼽았다.
이병철이 뿌린 신화, 낙관 못할 장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38년 삼성상회를 세운 때로부터 73년, 삼성은 일류기업을 향한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써왔다. 삼성전자가 2009년 3분기 소니, 도시바 등 일본 9대 전자회사의 총액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올리자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삼성 브랜드는 아파트, 보험, 증권 등 다른 업종에서도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 이병철은 타계하기 4년 전인 1983년, 73세의 고령으로 반도체 및 컴퓨터사업 신규진출을 선언할 만큼 치열한 기업가정신을 보였지만 오늘의 삼성이 이 정도의 글로벌 일류기업으로까지 성장하리라고 예상했을까.
미국 애플과 삼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단순한 특허 분쟁이 아니다. 애플은 삼성이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넘볼 수 없도록 기를 꺾어놓겠다고 벼른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도 길게 보면 삼성에 도움이 될지 불투명하다. 일본 전자업계는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 아래 ‘타도 삼성’을 위한 ‘일본 연합군’ 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은 삼성의 장래에 대해 “세계 기업들의 ‘모방과 무임승차’ 대상이 되면서 이제부터 어려운 시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 기업들이 품질과 기술력에서 아직 경쟁상대는 아니지만 앞으로 삼성이 소니와 같은 치욕을 맛보지 말란 법도 없다. 홍원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로 변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다짐을 구체적 행동으로 실행하지 못하면 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거듭나야
삼성의 조직문화인 1등, 실적, 효율 지상주의는 기업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사람으로 치면 재승박덕(才勝薄德)이나 오만하다는 인상을 남긴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업무 효율과 인간미의 조화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3, 4위에 머물 것으로 본 삼성라이온즈를 정규 시즌 1위로 올려놓고 팀 이미지도 개선한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은 기업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의 자신감과 한국 여권(旅券)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상대적 비중이 지금보다 낮아질 만큼 다른 기업들이 더 커야 하지만, 삼성의 위축으로 기업간 불균형이 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3의 기업들이 더 잘 뛰어 전체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삼성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축소지향형 균형은 공동선(共同善)이 될 수 없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 지키기에 성공할지 여부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