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새책/박균호 지음/268쪽·1만3000원·바이북스
경북 상주시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박균호 씨는 대구 대현동에 있는 중고서점 ‘합동북’을 즐겨 찾는다. 그는 “헌책을 찾기 위해 미국의 이베이까지 샅샅이 뒤지지만, 때로는 단골 헌책방 주인이 숨겨진 보물을 건네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오창우 씨
지난해 초 법정 스님이 입적한 후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라는 유언이 공개되면서 스테디셀러였던 ‘무소유’ 초판(1976년 발행)은 중고시장에서 무려 100만 원까지 값이 뛰었다. 동화작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를 영인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는 2003년 출간 과정에서 작가와의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서점 배포 하루도 안 돼 회수해 폐기처분됐다. 그러나 회수되기 전 팔렸던 몇 권 안 되는 책은 헌책방에서 희귀본으로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경북 상주의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그의 집엔 25년간 수집한 3000여 권의 책이 서가에 가득하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절판된 책’을 찾아 헌책방을 순례해 왔다. 그는 “신간을 사고 몇 년 후면 ‘저 책을 왜 샀지?’ 하고 후회하는 일이 많다. 한 권을 사더라도 오랜 세월 회자되며 검증된 책을 사고 싶었다”고 절판된 책에 대한 헌사의 이유를 말했다.
국내 도서애호가들이 ‘헌책’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 책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국내 인문서의 경우 2, 3년만 지나면 절판되기 일쑤. 심지어 시리즈 총서의 경우 완간도 되기 전에 앞서 출간한 목록이 절판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을 찾는 사람들은 ‘절판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전국의 온오프라인 헌책방에서도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은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재출간을 요구하는 글을 도배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열혈독자들의 활약 덕에 절판도서가 ‘오래된 새 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재출간된 도서의 운명은 다시 엇갈린다.
1993년에 나온 신영복의 ‘엽서’는 저자의 육필과 그림, ‘검열필’이라는 도장까지 그대로 영인돼 헌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블루칩’으로 통했다. 출판사는 개정판을 내놓았으나 개정판은 다시 절판됐고, 여전히 원판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고서’와 ‘헌책’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고서연구회’에 따르면 고서는 1959년 이전에 출간된 책을 말한다. 고서는 수백만∼수천만 원을 호가하며 문화재처럼 다뤄지지만 헌책의 경우 사진집(20만∼30만 원)을 제외한 단행본은 기껏해야 5만∼7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가끔 ‘초대박 헌책’이 무더기로 나오기도 한다. 저자는 “정신없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또 한 분의 애서가가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책은 가치를 모르는 자식에겐 물려줄 수 없으니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 한다. 책도 역시 흘러야 제맛”이라고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되살아나는 헌책방 열풍▼
온라인서점, 대형 매장 개설… 인터넷서도 50여 곳 성업 중
온라인 서점으로 유명한 알라딘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2가에 헌책방을 열었다. 이름은 ‘알라딘 중고서점 1호점’. 5만 종의 헌책을 구비한 이곳은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헌책방 체인인 북오프가 2006년 서울역 앞에 열었던 매장이 올해 1월 결국 문을 닫았다는 점에서 알라딘 헌책방의 성공 여부에 출판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고구마, 북어게인, 바이북, 야호책, 빨간구두, 북헌터 등 50여 개의 헌책방이 성업 중이다. 예전의 서울 청계천 고서점의 명성을 능가한다는 평이다. ‘북아일랜드’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모든 헌책방 사이트의 재고를 한꺼번에 검색할 수도 있다.
1일부터 경기 파주시 출판문화도시에서 열리는 북소리 페스티벌에서도 헌책방이 열린다. 이 행사에는 부산 보수동 책방거리의 대표적인 헌책방 ‘고서점’과 일본의 ‘도쿄고서조합’이 함께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