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리랑’의 감독과 주연으로 나선 춘사 나운규. 스포츠동아DB
1926년 오늘, 서울 단성사 객석에서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목놓아 통곡하는 소리와 ‘독립만세’의 외침도 간간히 섞여 있었다. 통곡은 하지 않았으되, 객석은 온통 눈물로 얼룩졌다.
나라 잃은 슬픔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렇게 터져나왔고, 감독은 물론 각본과 주연까지 맡은 20대 청년 나운규의 가슴 속 울분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단성사 스크린에 흐른 영화는 ‘아리랑’.
‘아리랑’이 개봉했을 당시, 초반 그리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지는 못했지만 지방으로 이어지며 입소문을 탔다. 그리고 일제는 이 같은 뜨거운 열기를 통제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신파물이나 외국 번안물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아리랑’은 영화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쉽게도 ‘아리랑’의 진본 필름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는 여전히 한국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거장’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트위터 @tadada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