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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이라고 자국민 살해 정당한가”

입력 | 2011-10-03 03:00:00

美, 알카에다 거물 알올라키 사살 놓고 또 인권논란
정부 “법리 검토, 문제 없었다”




“2001년 9월 10일 한 테러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치자. 이 용의자는 다음 날로 계획된 9·11테러에 대한 핵심 정보를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토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테러를 막기 위해 이 사람을 고문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베스트셀러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권과 법, 정의와 같은 보편적 원칙이 우선인가, 당장 위험에 처한 수천 명의 생명이 우선인가’를 묻는 이 질문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다. 9월 30일 미국이 무인항공기를 동원해 미국 시민권자인 테러리스트 안와르 알올라키(사진)를 제거한 것과 관련해 이번 작전의 정당성을 놓고 샌델 교수가 제기한 것과 비슷한 논란이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알올라키는 정보기관들이 오사마 빈라덴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는 거물 테러리스트였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지도자로 2009년 텍사스 미군기지 총격 사건 등 최근 미국을 겨냥한 굵직한 테러의 핵심 배후 역할을 했다. 당연히 미국 정보기관은 그를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제거 대상 1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악랄한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자국 시민을 재판 등 법적 절차 없이 죽이는 게 정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수정헌법 5조는 “정해진 법적 절차 없이 누구도 생명과 자유, 재산을 빼앗길 수 없다”고 규정한다. 뉴욕타임스는 1일 “법조 전문가 사이에서도 매우 논란이 많은 작전”이라며 “진보진영과 미국 내 무슬림들은 재판 절차 없이 정보기관의 판단만으로 어떻게 자국민을 죽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슬람 성직자인 야시르 카드히는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나 이란 정권이 재판에 따르지 않은 처형을 했다고 비난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작전은 매우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알올라키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살리스트에 올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체포되면 미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알올라키가 미국 법체계를 경멸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미국 정부는 알올라키가 알카에다 지도자로서 미국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었고 그를 생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행정부는 성명에서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테러단체와의 전쟁을 하면서 적의 지도부를 타깃으로 삼는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적법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사전에 이 같은 논란을 예상하고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를 했다. 법무부는 중앙정보국(CIA)에 작전을 허가하는 메모를 보냈으며 행정부 변호사들이 작전의 법적 문제를 검토한 결과 합법성에 대한 어떤 이견도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