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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꿈만 갖고 빈손으로 오렴”

입력 | 2011-10-03 03:00:00

저소득층 고교생 대상 ‘무상강의’하는 서울 ‘대찬학원’




저소득층 가정 고등학생에게 무상 강의 봉사를 펼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찬학원’의 수업 장면. 강남구 제공

“아들이 공부하겠다는데 엄마로서 도와주지 못해 가슴이 아팠어요.”

주부 김명애 씨(가명·50·서울 강남구 대치2동)는 지난달 말 둘째 아들(17) 얘기를 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은 고교생용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문제를 풀 정도로 영리했다. 친지들은 “영재학교나 과학고로 보내라”며 부러워했지만 가정 형편이 문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까지 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세 자녀를 데리고 지하 단칸방을 전전했다. 영재 소리를 듣던 둘째 아들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친구를 때려 사회봉사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는 화를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라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들은 “죄송하다.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책을 폈다. 평소 좋아하던 수학 과학은 금방 따라잡았지만 나머지 과목들이 문제였다. 학원 보낼 여력이 없던 김 씨는 “모르는 것은 성당에 다니는 대학생 형 누나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들 몰래 인터넷으로 ‘무료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무작정 동네 학원을 찾아가 “학원비는 나중에 갚을 테니 수업만 듣게 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그러다 올 6월 김 씨는 동사무소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성적은 좋은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무상 강의’를 해주려는 입시학원이 있다”고 했다. ‘대찬학원’이란 곳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김 씨에게 학원 원장은 “듣고 싶은 과목을 다 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7월부터 학원을 다니는 김 씨의 둘째 아들은 “의대에 진학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대찬학원은 현재 저소득층 가정 고등학생 7명에게 무상 강의 봉사를 하고 있다. 학원비를 받지 않고 원하는 과목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대치2동 저소득층 62개 가정 학생들 중 반 석차 10등 내외의 아이들을 동사무소에서 추천받았다.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강남 학원가에서 무료 강의 봉사가 진행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박은재 원장(48·여)이 봉사를 결심한 것은 14년 전부터. 한 학원 실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가 실직해 돈이 없어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학생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당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꿈을 접어선 안 된다. 학원장이 되면 이런 학생부터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이 14년 만에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박 원장은 “보도가 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학생들이 찾아올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도 “복지관이나 동사무소를 통해 꼭 필요한 학생을 선별해 무료 강의 혜택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