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60m 굴러 부상… 벌레 먹고 버티며 유서 써둬자녀-친척 총동원… 극적구출
그의 차량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앤젤레스 국립수목원 도로 아래 약 60m 계곡으로 추락한 것은 9월 23일 밤이었다. 맞은편 차량의 전조등에 시야가 흐려진 것. 나뭇잎과 개미 등 곤충을 잡아먹으며 연명해오던 여섯 자녀의 아버지 데이비드 라보 씨(67)는 28일 자신보다 먼저 추락해 처박혀 있던 옆 차량의 트렁크로 가까스로 기어가 유서를 남겼다.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차 안에) 죽어 있는 사람은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다. 사랑한다. 아빠로부터.”
라보 씨는 주말마다 해변, 와인농장을 방문하거나 쇼핑에 나섰기 때문에 가족들은 처음 며칠간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닷새가 지난 28일 아침까지 소식이 없자 자녀들은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행정 절차에만 며칠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은 가족들은 직접 나섰다. 아들 션은 여자친구와 친척을 모두 불러 수색에 나섰다. 29일 오전 라보 씨의 신용카드 사용 장소와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확인한 가족은 실종 의심 지점인 휴스 연못 주변 도로를 샅샅이 뒤졌다. 해가 떨어진 뒤 도로가 급격히 꺾이는 곳에 잠시 차를 세운 션은 ‘살려 달라’는 신음소리를 듣고 아버지를 구출했다. 라보 씨가 유서를 쓴 바로 다음 날이었다. 가족의 힘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라보 씨 옆 차량 운전자 가족의 운명은 엇갈렸다. 9월 14일 카지노를 다녀온다고 나섰다가 실종된 멜빈 겔펀드 씨(88)의 딸 조앤 매트랙 씨는 30일 라보 씨의 생환 소식을 전하는 뉴스와 경찰 확인 과정을 거쳐 옆 차량에 있던 사망자가 부친임을 확인했다.
사설탐정을 고용하고도 부친의 행방을 찾지 못했던 매트랙 씨는 “무척 슬프지만, 포기하지 않은 (라보 씨) 가족 덕분에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