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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시신 수습한 사람은 조선 구하려 파병된 명나라 장수”

입력 | 2011-10-03 03:00:00

명량대축제 3년째 참석, 진린장군 14세손 진방식 씨




2일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 바다 울돌목. 진방식 씨(77·사진)가 울돌목에서 재현되는 414년 전 명량대첩 전투 장면을 지켜봤다. 진 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하기 위해 파병된 중국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 진린(陳璘·1543∼1607) 장군의 14세손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패망하자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청나라의 칼을 피해 조선에 망명해 조선인으로 살았다.

진 씨는 2009년부터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 수군을 무찌른 명량대첩의 정신을 되새기는 명량대축제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명량대첩 당시에는 명군(明軍)의 출병 전이어서 역할이 없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 때는 진린 장군이 전투를 총지휘했다”고 말했다. 또 “이순신 장군의 일기에 ‘진린 장군이 조선의 사정을 잘 모른 채 전투를 지휘한다’고 불만을 적은 부분이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진린 장군이 시신을 수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량해전 이후 진린 장군은 명나라 수군 사령부가 있던 현재의 완도군 고금도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옮겨와 중국의 전통 장례절차에 따라 사당을 짓고 100일 동안 시신을 안치하고 애도했다”고 강조했다.

진 씨는 “진린 장군이 영결식에서 제문(祭文)을 통해 ‘이순신 장군이 창을 베개 삼아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종일 쉬지 않고 전선을 돌봤고 무기도 만든 날이 적지 않았다’며 그의 죽음을 비통해했다”고 설명했다. 영결식 이후 시신은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는 것. 진 씨는 “명량대축제가 역사를 기억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해남=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