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90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윌리엄 켄트 의원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자신이 기증한 산과 숲을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려는데 거기에 ‘켄트’라는 성(姓)을 붙여도 될지를 묻는 대통령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며칠 후 대통령의 답신이 도착했다. “당신이 옳아요. 자기 자선에 명판을 붙이지 않으려는 자세가. 당신과 아들들이 ‘켄트’라는 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훌륭합니다. 나도 아들이 넷인데 그 애들도 ‘루스벨트’라는 성을 지키기 위해 똑같이 노력할 겁니다.”
한 세기 전 오간 이 편지. 두 정치인의 진정성이 진하게 와 닿는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가 최고의 가치이자 지식인의 존재 이유다. 그걸 자식 교육의 지고지선으로 삼은 대통령과 의원의 담론이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덕목 같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부러운 게 있다. 두 사람의 편지 속에 완곡하게 드러난 ‘명성(名聲)’에 대한 이해다. 이름이란 게 공동선을 위해 노력할 때 스스로 빛나는 것이지 자선행위 앞에 명판을 세운다고 알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름을 더럽힐 행동에 주저 않는 우리 정치권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켄트 의원은 대통령에게 보낸 답장에 사진 몇 장을 동봉했다. 존 뮈어(1838∼1914)라는 자연보호론자가 촬영한 숲 사진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답신에 ‘좋은 사진’이라고 촌평했다. 1908년 이 숲이 ‘존 뮈어 국가기념물’로 명명됐음은 물론이다. 스코틀랜드 이민자인 존 뮈어는 미국에서 자연보호운동의 선구자로 칭송되는 자연주의자. 요세미티, 세쿼이아 등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국립공원 지정이 죄다 그의 자연보호활동과 저술에서 비롯된 자연보호운동의 소산이다. 존 뮈어 숲은 샌프란시스코 북쪽 19km, 소살리토 근방,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마지막 부분에 유인원이 인간을 피해 깃든 숲, 바로 거기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