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기자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도가니’를 쓴 작가 공지영 씨는 “판결 장면을 묘사한 한 인턴기자의 기사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2009년 책이 나와 40만 부가 팔렸고 영화까지 돌풍을 일으키면서 경찰은 재수사를, 정부는 진상 규명을 다짐했다. 분노로 가득 찬 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하다 뒷북을 치느냐”는 여론의 질책은 피할 수 없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 질책은 사회부 기자인 내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못 해도 가슴으로, 몸으로 울부짖었던 그들의 절규를 나는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기자의 초심(初心)’을 잊은 건 아니었을까.
당시 사건을 맡았던 임은정 검사는 2007년 3월 공판 당일 작성한 일기에서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이다”라고 적었다. 공지영 씨는 피해자들을 만난 뒤 “잘 읽히는 소설을 써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를 포함한 언론은 직무유기라는 죄를 지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이 교육계와 법조계가 한통속이 돼 숨기려 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오랜 시간 열정을 쏟는 동안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런 언론이라면 피해자들을 가뒀던 ‘도가니’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한주 판사는 최근 “내 판결로 약자가 큰 고통을 받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약자의 아픔이 우리 사회의 아픔이라는 것을 왜 잊고 있었는지, 이젠 기자와 언론이 반성문을 쓸 차례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