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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신광영]영화 ‘도가니’가 고발할 때까지 우리 기자들은 뭘 했나

입력 | 2011-10-03 03:00:00


신광영 사회부 기자

2일 오전 1시 영화가 시작된 서울 용산의 한 ‘도가니’ 상영관은 객석이 3분의 2쯤 차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으∼ 안돼”, “제발 그만” 같은 탄식이 객석에서 들려왔다.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대신해 그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은 듯했다. 가해자 전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돼 청각장애인들이 울부짖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욕설까지 나왔다.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도가니’를 쓴 작가 공지영 씨는 “판결 장면을 묘사한 한 인턴기자의 기사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2009년 책이 나와 40만 부가 팔렸고 영화까지 돌풍을 일으키면서 경찰은 재수사를, 정부는 진상 규명을 다짐했다. 분노로 가득 찬 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하다 뒷북을 치느냐”는 여론의 질책은 피할 수 없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 질책은 사회부 기자인 내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못 해도 가슴으로, 몸으로 울부짖었던 그들의 절규를 나는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기자의 초심(初心)’을 잊은 건 아니었을까.

‘도가니 사건’을 다룬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봤다. 고작 3건뿐이었다. 그마저도 공지영 씨를 인터뷰한 내용 등이 전부였다. 사건의 전말을 다루거나 피해자들의 호소를 다룬 기사는 없었다. 다른 언론도 비슷했다. 한 신문사 광주 주재기자가 몇 차례 적극적으로 다뤘을 뿐이었다. 언론은 피해자와 그 주변의 애타는 호소를 외면했다. 진실 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오랜 투쟁은 딱하지만 별 도리가 없는 일로 치부됐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임은정 검사는 2007년 3월 공판 당일 작성한 일기에서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이다”라고 적었다. 공지영 씨는 피해자들을 만난 뒤 “잘 읽히는 소설을 써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를 포함한 언론은 직무유기라는 죄를 지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이 교육계와 법조계가 한통속이 돼 숨기려 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오랜 시간 열정을 쏟는 동안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런 언론이라면 피해자들을 가뒀던 ‘도가니’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한주 판사는 최근 “내 판결로 약자가 큰 고통을 받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약자의 아픔이 우리 사회의 아픔이라는 것을 왜 잊고 있었는지, 이젠 기자와 언론이 반성문을 쓸 차례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