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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일회성으로 와글와글 하는 ‘도가니’론 안 된다

입력 | 2011-10-03 03:00:00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청각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 ‘도가니’를 관람한 국민의 분노가 뜨겁다. 자기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교육계 인사들이어서 충격이 더 크다. 이 사건 관련자 일부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교직에 그대로 몸담고 있다.

‘도가니’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경찰은 5년 전에 일어나 이미 형사처벌이 확정된 인화학교 사건을 재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당시의 양형(量刑) 배경을 설명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같은 당 진수희 의원은 복지재단의 투명성 확보 및 족벌경영 방지를 위한 일명 ‘도가니 방지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 권의 소설, 한 편의 영화가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또 다른 ‘도가니’ 피해자들이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국은 친인척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재단에 구조적 비리가 없는지 구석구석 살펴봐야 한다. 여론이 들끓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장애인을 인권의 소외지대에 방치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다만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도가니’를 제작한 황동혁 감독은 마녀사냥이나 신상털기 같은 감상적 분노를 경계했다. 이제 와서 인화학교 사건 판결이 잘못됐다고 몰아붙이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지금의 법감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판결일지 모르지만 당시엔 청소년 성폭행 사건에도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를 적용했다. 그때는 경위야 어떻든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을 못하거나 형을 경감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고소와 무관하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것은 ‘조두순 사건’ 이후인 지난해 4월이다. 과거 판결을 놓고 소모적인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한 해 평균 6000건 넘게 발생하는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도가니’의 경우에서 보듯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권 등에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도 법률체계의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기존 법률을 제대로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 노출된 부분을 꼼꼼하게 손질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