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법 설명하다 보니 성격도 성적도 바뀌었어요
서울 환일고 2학년 손명국 군. 수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격도 활발해지면서 중학교 때 중하위권이던 성적이 고교 입학 후 전교 4등으로까지 올랐다.
그간 손 군을 부쩍 소극적인 성격으로 만든 ‘주범’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판타지 소설에 빠지면서 친구들과 놀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판타지 소설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열 권은 후딱 읽었어요. 주말에도 나가 노는 것보다 판타지 소설 읽는 것을 더 좋아했죠. ‘드래곤 라자’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 등 웬만한 작품은 읽었어요.”
판타지 세계에 빠져있던 손 군이 ‘현실세계’로 돌아온 건 중2 2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고 나서부터.
판타지 소설을 끊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예·복습도 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했다. 하지만 성적의 변화는 없었다.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감이 근원적인 문제였다.
“다른 친구들 앞에 내세울 게 없다 보니 의기소침했어요. 학습태도도 다르지 않았어요.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거든요. 뭔가 자신감을 회복할 계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 군은 ‘수학’으로 눈을 돌렸다. 어려서부터 왠지 수학이 좋았다. 암기를 유독 싫어했던 손 군으로선 기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산을 하면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 매력적이었다. 어려운 문제가 결국 풀릴 때 피부로 느끼는 짜릿함도 좋았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매일 수학공부를 했던 손 군에겐 기본기도 있었다.
“수학이라도 월등히 잘하면 경쟁력이 생기고 자신감도 늘 것 같았어요.”
중3이 시작되자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 수학 성적이 점차 올랐다. 2학기 중간, 기말고사를 합해 수학과목에서 전교 6등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풀이법을 설명해주다 보니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손 군은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 만큼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중3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그간 수학에만 집중된 공부방식에 변화가 필요했다. 한 살 터울의 형은 “고등학교 가서 수학만 잘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고교 입학 전 치르는 배치고사 준비와 고교 교과목 예습을 함께 했다. 국어는 이틀에 한 번 문학작품을 예·복습하고 문제집을 풀었다. 영어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 내용을 파악하고 모르는 단어는 수첩에 정리해서 외웠다.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만 따지면 입학 시 제 성적은 전교 224등이었거든요. 배치고사를 보고 난 뒤 ‘느낌’은 좋았지만 전교 4등은 상상도 못했죠.”
입학 직후 3월 모의고사에서는 언어, 수리, 외국어 세 과목에서 300점 만점에 283점을 받았다. 전교 4등.
1학년 2학기 때는 난생처음 친구들로부터 학급 반장 후보에 추천도 받았다. 투표에서 2등을 차지해 부반장을 맡았다. 2학년 1학기 때도 부반장이 됐다.
“반장, 부반장은 대단한 아이들만 하는 줄 알았어요. 공부를 잘한 것보다는 활달하게 바뀐 성격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제가 과거 ‘조용한 아이’였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요.”
성적도 성격도 변하면서 다시 태어난 손 군. 여러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목표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김종현 기자 nanzz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