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감독은 창조주… 시공간을 창조하니까요”
수경 감독에게 선물로 받은 애니메이션 작품 ‘서울 사는 고양이’의 DVD를 손에 들고 감독과 함께 사진을 찍은 송경진 군(오른쪽). 필름안 사진은 수경 감독이 공동 연출한 애니메이션 ‘로망은 없다’(2009)와 ‘서울 사는 고양이’ (2011).
중1 때 친구들과 만화동아리 ‘루트’를 결성해 5년째 활동 중인 송 군. 그가 꿈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갈 기회를 얻었다. 최근 회화작가 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인 수경(본명 이수경·35) 감독을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것이다. 수경 감독은 박재옥, 홍은지 감독과 공동 연출한 애니메이션 ‘로망은 없다’로 ‘2010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경쟁장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인물이다.》
○ 애니메이션 감독의 일은 ‘신’의 영역?
“애니메이션 감독이 하는 일은 ‘신의 영역’과 같다고 생각해요. 실사영화는 일반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 소품, 인물을 카메라로 촬영해 만들잖아요. 애니메이션은 달라요. 모든 배경과 소품 하나하나, 실재하지 않는 인물과 캐릭터까지 직접 그려서 창조해야 하니까요.” 애니메이션 감독이 하는 일에 대해 송 군이 묻자 수경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수경 감독은 한때 전시활동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한 장의 회화에 주제를 함축해 담기보단 여러 장의 그림을 통해 ‘스토리’를 담는 작업을 선호했던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영상물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했다. 2006년, 그의 전시를 본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교수가 “애니메이션 연출을 배워보면 어떻겠느냐”고 강력히 권유하면서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만화 그리기에도 관심이 많던 수경 감독은 생각 끝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애니메이션 연출 전공과정에 등록했다. 2년 반 동안 실무를 배우고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예상보다 더 즐거웠다. 그는 단편 애니메이션 ‘사탕’(2008년)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수경 감독은 “처음 내 작품을 만들었을 땐 그림이 움직이는 게 하도 신기해서 1초에 해당하는 짧은 영상을 100번이나 계속 다시 돌려서 보기도 했다”며 웃었다.
○ 애니메이션 감독, 그림 못 그려도 OK!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림 못 그리는 애니메이션 감독도 많아요.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리면 잘 그리는 사람을 파트너로 두면 되지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림 실력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연출력이거든요.”
순간, 그림에 소질이 없단 이유로 감독의 꿈을 접었던 송 군의 얼굴에 놀라움과 안도감이 섞인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꿋꿋이 걷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것인가’를 둘러싼 창작의 고통을 견뎌야 함은 물론이고,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도 아직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워낙 자본이 많이 들어요. 예를 들어 독립영화는 몇백만 원으로도 일단 제작이 가능하잖아요. 애니메이션은 노동력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10분짜리 만들 때도 기본 1000만 원은 들거든요.”(수경 감독)
물론 보람도 크다. 가장 기쁠 땐 역시 관객들과 만날 때다. 수경 감독은 ‘로망은 없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벅차오른 감동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간의 고생이 싹 씻겨 내려갔다는 것. 결국 자신이 애니메이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일본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애니메이션을 보러 영화관에 가요.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봐왔기 때문에 친숙한 거죠..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관객들의 관심이 더욱 중요하답니다.”(수경 감독)
장재원 기자 j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