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에서 쓱쓱 칠판에 그린 ‘츄리닝’ 1000회 돌파 기념 캐릭터 앞에서 국중록(왼쪽)·이상신씨가 ‘넘버원’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벌써 1000회라고요? 아이디어 뱅크는 카페
우린 선후배 사이…작업하면서 2년간 동거
반전개그·건전만화 스포츠동아와 잘 맞아
“솔직히 연락 받고 놀랐어요. 1000회라니, 믿기지 않더라고요. 한 500회 넘었나 했는데. 기쁘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힘들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스포츠동아에서 만난 ‘츄리닝’의 스토리작가 이상신 씨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스포츠동아의 인기 연재만화 ‘츄리닝’이 10월 4일로 연재 1000회를 맞았다. 2008년 7월 1일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 장장 39개월이란 대장정 끝의 쾌거다.
국중록(이하 국) :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1년만 하기로 했어요. 저희도 1년하고 다른 거 할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그런데 막상 1년이 되니까 ‘1년만 더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1년만 더, 1년만 더’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2008년 7월 1일 스포츠동아에 첫 연재가 시작된 이래 ‘츄리닝’의 편집 디자인은 조금씩 세련되고 슬림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스포츠동아 연재기간을 포함해 한 작품을 9년 가까이 끌어온 ‘츄리닝’의 힘이 궁금했다. 몇 명 되지 않는 캐릭터 안에서 그처럼 무궁무진한 소재를 뽑아내는 능력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이상신(이하 이) : “제일 큰 원동력은 생계유지죠(하하하!). 사실 ‘츄리닝’을 시작하고 나서 3년쯤 되니까 한계가 느껴졌죠. 한동안 방황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주로 소재를 찾아요.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 씨는 집에 작업실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아이디어를 구할 때는 반드시 밖으로 나간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을 꺼내 그날의 주요 뉴스를 훑으면서 소재를 찾는다.
이 씨와 국 씨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처음 ‘츄리닝’ 연재를 시작하면서 2년 가까이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연재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료는 정확히 5-5로 나눈다.
국: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 함께 살았어요. 처음에는 방이 한 칸짜리였죠. 방 양 쪽에 책상 두 개를 놓고, 잠은 가운데에서 같이 잤습니다. 자다보면 살이 안 닿을 수가 없잖아요. 서로 안 닿으려 등을 돌리고 자지만, 자다가 깨보면 상대방 얼굴이 코앞에 와 있는 거죠.”
이: “우리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거든요. 낯가림이 심한 편이고. 그나마 나중에 방 두 개짜리로 이사하니까 좀 낫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 두 작가는 일명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 편을 꼽았다. 못생긴 여자가 예쁜 척을 하자 상대 남자가 심각한 포즈(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왔다고 한다)를 취하고는 여자에게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라고 묻는 장면으로 끝나는 만화였다.
이: “한 번은 집창촌을 소재로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부모님이 ‘츄리닝’을 가끔씩 챙겨보실 때였죠.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신문을 들고 오시더니 ‘이 내용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죠. 그 후로는 외설적인 내용은 피하게 되더라고요.”
개그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이 하고 싶었던 작품은 정통 극화였다. 이 씨는 “멋쟁이 만화가 하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개그만화를 하다보니 “‘츄리닝’의 작가들은 개그맨보다 웃길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단다.
이: “‘츄리닝’이 인기를 끌게 되자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항상 사진기자 분들이 ‘사진 찍을 때 웃긴 표정을 지어라’하고 주문을 하시는 거예요.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데 혀를 내밀고, 눈을 까뒤집고… 정말 힘들었죠.”
대학생 시절 ‘츄리닝’을 시작한 두 사람은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국: “이러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츄리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 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반전만화 ‘츄리닝’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