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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목사 꿈 접고 고3 딸 위해 대리운전 나섰던 아빠가…

입력 | 2011-10-05 03:00:00

출근길 일 나섰다가 참변… “봉사와 딸밖에 몰랐는데…”




“요즘엔 주말에도 일을 나가셨어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도 제 대학등록금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기는 고등학교 3학년 김소은 양(18)의 눈시울은 금세 다시 붉어졌다. 패션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는 김 양에게 “함께 실기시험에 가주겠다”고 하던 아버지는 든든하고 자상한 지원군이었다. 그런 김 양에게 대입 실기시험을 사흘 앞두고 들이닥친 아버지의 사고 소식은 충격이었다.

김 양의 아버지 김성권 씨(55)는 3일 오후 7시 40분경 서울 강변북로 일산 방향 동호대교 200m 앞 지점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김 씨가 중고차를 구매자에게 배달하러 가던 중 차가 고장 나 도로 3차로에 그대로 멈춘 것이 화근이었다. 다른 차들이 피할 수 있도록 수신호를 보내던 김 씨를 미처 보지 못하고 승용차가 그대로 들이받은 것. 김 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김 씨는 10여 년간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다 1년여 전부터 목회 일을 그만뒀다. 이후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김 씨의 동생 김재권 씨(53)는 “형님은 봉사와 딸 두 가지밖에 모르던 사람”이라며 “교회를 운영할 때는 물론이고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동료 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었을 정도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한 김 씨는 택시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0대 중반부터는 교회에서 차량 운전을 하거나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봉사하는 삶을 꿈꾸던 김 씨는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신학대에 진학해 목사가 됐다. 교인이 적어 운영이 어려웠지만 노숙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찾아오면 그때마다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다.

실업고에 재학 중인 김 양은 전교 10등 안에 들고 일찍부터 대학 진학을 준비할 정도의 모범생. 김 씨는 3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진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돌보고 직접 학교에 찾아가 입시 상담을 하는 등 딸의 입시 뒷바라지를 해오고 있었다.

“대학 가면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하셨는데도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시다니….”

5년 전 찍은 증명사진을 급히 확대해 만든 영정을 올려다보던 김 양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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