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근원적 성찰과 자기반성으로 이끌어■ ‘최인훈 문학’ 심사평
다섯 작가 가운데 한 분을 수상자로 선정해야 하는 우리의 논의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대작가들의 순위를 매기는 외람된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우리의 논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박경리 선생의 역사의식과 생명의식을 계승하는 계보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김원일 씨와 황석영 씨 중에서 한 분을 선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 두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토지’의 전사에 해당하는 조선후기에서 시작하여 현재 진행 중인 분단시대에 이르는 전체 지향으로 볼 때 박경리 선생의 작가정신과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태일의 시대를 전형적인 상황으로 압축한 조세희 씨와 1960년대식 감수성의 방황과 희망을 전형적인 인물형상으로 묘사한 김승옥 씨의 작품에도 참신하고 실험적인 문체만이 아니라 밀도 높은 역사의식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한국문학사에 기억될 탁월한 업적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두 작가 중에서 한 분을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논의의 중간에서 우리는 박경리문학상을 제정한 취지를 모두 함께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으며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이 시대의 가장 작가다운 작가’라는 취지를 다시 검토하고 함께 고심한 끝에 최인훈 씨를 제청하자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다.
최인훈 씨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제기함으로써 독자들을 불안한 탐구와 자기반성의 세계로 안내하여 주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다 같이 한국 사회의 자생적 동력학이 되지 못하고 남북의 이념대립이 박래(舶來·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소비품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비판은 한국인에게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탈식민주의적인 인식의 반영이다. 그의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하는 사건은 어린 시절에 교사로부터 자아비판을 강요당하는 장면인데 이러한 심리적 외상도 북한에 국한되는 상처라기보다는 어린아이가 남북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는 상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최인훈 씨에게 모국어는 민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한국인의 보편언어이다.
우리는 최인훈 씨의 업적이 박경리 문학의 본거에 어긋나지 않으며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넘어 세계문학으로서도 높은 문학성과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김치수 김인환 오생근 정현기 최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