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충길, 그림 제공 포털아트
나무로부터 그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치열한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드는 게 처음부터 사람을 위함이 아니고,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게 처음부터 사람의 감상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치열하게 진행된 나무의 이기주의적 생명 활동이 궁극에 이르러 자연의 전체적 생명 활동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온전한 나를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을 위한 일이 된다는 것, 치열하게 살아야만 타인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그는 치열하지 못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냈습니다. 치열하게 살지 못한다면 남을 위하거나 남을 탓하는 게 모두 무의미하다는 전언입니다.
나무의 생명력은 인간의 생명력과 매우 흡사합니다. 인간 세상의 4계절에 나무처럼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파릇파릇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오고 그것이 여름이면 무성한 우듬지를 이뤄 녹음을 과시하고 가을이면 열매 맺고 잎을 떨어뜨려 헐벗은 몸으로 돌아갑니다. 겨울 내내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혹독한 겨울나기를 하는 나무의 형상은 주검과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한살이를 위한 인고의 시간, 지난 한살이의 생명 활동을 다가올 한살이에 반영하는 과정입니다.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라는 책에서 읽은 한 역사학자의 나무 이야기와 일본의 목련 이야기는 신경림 시인의 ‘나무’로 이어져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합니다. 나무의 치열한 이기주의, 그리고 20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꽃을 피우는 생명의 초월성을 되새기며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겠습니다.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제 치레하느라 오히려/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보다 실하고/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