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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성폭력 친고죄 폐지

입력 | 2011-10-08 03:00:00

제3자 고발로도 수사
정부 ‘도가니’ 처벌 강화




영화 ‘도가니’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장애인 성범죄 근절에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7일 장애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처벌 범위는 확대하는 한편 피해자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장애인 대상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장애인 성범죄를 친고죄(親告罪) 대상에서 제외하고, 형량을 3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으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고죄 대상에서 제외되면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인지하거나 제3자의 고발로 수사를 진행해 처벌할 수 있다. 지난해 아동 대상 성범죄는 피해자의 고소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됐지만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는 친고죄로 남아 있다.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됐던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은 것도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합의가 됐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또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대상에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을 추가해 항거불능 상태였는지와 관계없이 처벌하기로 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단체들은 “장애인이 성폭력 피해 당시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는가’를 피해자가 입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항거불능 요건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와 함께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서는 한 번만 범죄를 저질러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 장애인 성폭행범 “저항 없었다”는 변명 이젠 안통한다 ▼

현행법으로는 2회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다.

아울러 성범죄를 저지른 교직원의 퇴출 기준을 현행 금고형 이상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으로 낮추기로 했다. 성폭력 혐의를 받는 교원은 즉시 교육과 학생지도 활동에서 배제된다. 학생이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을 경우 피해자가 일반 학생인 경우보다 처벌 수위를 상향해 중징계를 받도록 각 학교에 학칙 개정을 권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애인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길태기 법무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살인죄 등 더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제도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문 변호사가 소송 대리

정부는 ‘법률조력인 제도’의 대상에 성폭력 피해 장애인도 포함하기로 했다. 법률조력인 제도는 사건 발생부터 재판 과정까지 전문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하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제도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추가로 정신적 피해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스마일센터’에 성폭력 피해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을 신설해 피해자와 가족이 심리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또 사회복지법인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공익이사제를 도입하고 감사 중 1명은 법률 또는 회계전문가를 선임하도록 했다. 사회복지시설의 정보공개가 의무화되고 거주시설 내 장애인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장애인과 보호자가 참여하는 ‘인권지킴이단’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 밖에 수사기관에서 장애인 진술의 객관성·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수화를 할 수 있는 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 “정부가 뒤늦게 재탕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도가니 사건’을 촉발한 광주 인화학교에 대해서는 폐교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고, 관련 교사는 원칙적으로 교단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17명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추가 성폭행 여부 및 관할 행정청의 관리·감독의 적정성, 학교 내 비리를 수사하고 있다. 이 학교 재학생 22명 중 가정에서 통학이 가능한 학생 15명은 인근 학교로 전학하고, 인화원에 거주하는 7명은 다른 시설로 옮기도록 할 방침이다.

이날 종합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뒤늦게 재탕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06년 이 사건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뒤 무려 5년 만에야 대책을 내놓았다. 공익이사제 도입은 2007년 이미 정부가 개정을 추진했던 내용으로 당시 한나라당과 종교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은 대부분 이미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내용이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