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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신간소개]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입력 | 2011-10-11 18:07:58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파헤치는 소설을 선보였던 작가 김경욱이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출간했다.

그의 여섯번째 소설집인 이 책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예지 등에 게재한 9편의 단편을 한데 모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특유의 필력과 개성이 엿보인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 창비 / 299 쪽 / 11000원  

표제작 〈신에게 손자가 없다〉는 최근 ‘도가니 열풍’으로 사회적 이유가 된 '학교 성폭행 문제'를 다뤘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말을 잃은 초등학생 손녀를 대신해 할아버지가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가스가 끊기고 전기와 수도마저 끊길 위기에 처한 재개발지역에서 사는 초등학생 손녀와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어렸을 때 세상을 떴다. 소녀를 성폭행한 학생들의 부모는 하얀 봉투에 600만원을 담아서 위로금이라며 내민다. “새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돈이면 재개발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유혹을 당당하게 뿌리치며 돈봉투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진지하고 차분하게 복수를 준비한다.

 도시의 수도계량기 수백 개가 동파된 어느 월요일 아침. 부동산중개업소와 학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동네 지적도와 인근 아파트단지의 상세지도, 학생들의 신상카드, 입주민 주차스티커 발급대장 등과 같이 돈 될 리 없는 물건들이 사라진다. 가해자들에 대한 할아버지의 치밀하고도 냉정한 복수 계획이 실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복수의 최종 목표는 아파트에 주차된 가해학생 부모들의 자동차를 불태우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목표대로 복수는 성공하지만, 가해 당사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위해가 되지 않는다.

“사내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켰다. 아침뉴스를 듣는 내내 사내의 얼굴은 삼엄했다. 뉴스가 끝나도록 무슨 무슨 궁전이라는 아파트단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사내의 인상이 구겨졌다.”
할아버지의 비장한 복수극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심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막이 내린다.

또 다른 단편 〈러닝 맨〉에서는 잠재적 범죄자들에 둘러싸인 사회 상황과 빈부 차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역시 표제작처럼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가난한 과외교사인 주인공이 자신의 과외수업 제자의 강남 여고생과 함께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부녀자 납치 사건에 대한 소문이 흉흉하게 떠도는 가운데 문신을 한 남자, 오토바이 폭주족 등과 마주친다.

구체적인 위협이 없지만 상대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묘사가 범죄 스릴러 소설을 방불케 한다. 소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강남 아파트 단지를 선망하는 주인공 역시도 강남 사람들에게는 잠재적 범죄자로 비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결국은 성 밖의 인간들 모두가 적대적 시선에 포박돼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밖에도 이 소설집에는 1%의 상류층을 향한 속물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99%〉, 두 남녀의 불가사의한 죽음을 다룬 〈하인리히의 심장〉, 출구 없는 가난에 짓눌린 남자들 삼대의 생활을 담담하게 묘사한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등이 수록돼 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 창비 / 299 쪽 / 11000원

강미례 동아닷컴 기자 novemb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