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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대회 金따도 갈곳없어… 술집서 알바”

입력 | 2011-10-12 03:00:00

■ 작년대회 高3입상자 56%만 취업 성공




지난해 국내 고졸 기능 인력의 핵심인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들도 절반 정도만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동아일보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받은 2010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 중 고교 3년생 166명의 취업 실태 자료를 조사한 결과 취업자는 56%인 93명이었다. 대학 진학자는 59명(35.6%)이었으며 군 입대를 선택한 학생은 14명(8.4%)이었다.

특히 건축·공예·미예 등 ‘비인기 부문’ 22개 종목 입상자는 취업률이 20%에 그쳤다. 전국기능경기대회는 총 6개 부문 48개 종목으로 치러지는데 기계·금속·전기전자 등은 ‘인기과’로, 건축·공예·미예 등은 ‘비인기과’로 분류된다. 비인기과의 진학률은 75.6%로 지난해 서울지역 고교생의 평균 대학 진학률인 62.8%보다 높았다. 기계 금속 전기전자 부문 26개 종목 입상자는 62.3%가 삼성과 현대중공업 등에 취직했다.

2003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조적(組積·벽돌쌓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던 편도성 씨(26)는 2005년 한국 대표로 핀란드 헬싱키 국제기능올림픽에까지 출전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전공을 살릴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 취업제안 0…기능인 길 외면할 수밖에

편 씨의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니다. 실제 지난해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 중 ‘취업 비인기학과’인 건축·공예·목공 분야 취업률은 20%에 그쳤다. 편 씨는 “건축을 전공한 다른 기능경기대회 입상자는 지금도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기회를 노리고 있다”며 “대학에 진학하는 후배를 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내장식 종목 은메달을 따낸 석상민 씨(19)는 고교 졸업 후 전공과 관련 없는 토목과를 택했다. 석 씨는 “금속·기계 분야는 대기업 취업과 바로 연계되지만 건축·공예 등은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취업 제안이 들어오는 곳도 없어 대학에서는 전공을 바꿨다”고 했다. 기능경기대회 수상으로 400만∼12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뒤 전공이 더는 쓸모가 없어진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교 3년 동안 익힌 기능인의 길 대신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 경력을 ‘대학 진학용’으로 쓰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입상한 안모 씨(19·여)는 수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안 씨는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입상해 봐야 취업 제의는 없다”며 “결국 특별전형이 있는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기계·금속만 인기

전국기능경기대회 종목은 취업률에 따라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으로 갈린다. 폴리메카닉스와 금형 등 기계 부문과 판금 배관 등 금속 부문이 인기 직종이다. 하지만 업종 특성상 조적 미장 타일 등 건축 관련 분야는 취업길이 좁다. 경기 지역 A전문계고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배우려는 학생은 꾸준히 있는데 취업길이 좀처럼 뚫리지 않아 안타깝다”며 “고졸 취업을 늘리려면 비인기 기능직종에 종사하려는 학생들부터 지원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주최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입상자 취업지원 협약을 맺은 기업을 보면 ‘기계·금속 편중 현상’이 뚜렷하다. 협약체결 기업 10곳 중 보루네오가구와 GS건설, 기업은행 등 3곳만 비(非)기계 금속 기업이다. 이들 기업도 지난해와 올해 통틀어 2명 채용에 그쳤다.

지난해 패션 분야에서 입상한 김모 씨(19·여)는 “기능경기대회 인력이 필요한 회사가 삼성 현대뿐만은 아닐 것”이라며 “비인기 종목 기능 인력을 위한 기업협약 체결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 산업별 맞춤 대책 필요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능경기대회 비인기 종목 입상자의 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며 “산업별 특성이 달라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건설업계의 경우 전문계고 기능 인력의 취업이 유독 어렵다. 국내 대규모 종합건설사들은 고졸 기술인력을 뽑지 않는다. 서울 지역 B전문계고의 한 교사는 “관리 기술직은 종합건설사에서 채용한 대졸자로 충당하고 현장 기술직은 일용직을 사용하다 보니 건축 관련 기술을 배워 봐야 취업할 곳이 마땅찮다”고 말했다. 공예나 요리·미용 분야 메달리스트들은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피부 미용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김모 씨(19·여)는 “고졸 기능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받는다는데 피부 미용 같은 전공은 그중에서도 버린 자식”이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해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 열린 채용에도 비인기 종목은 무대책

지난달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가 내놓은 ‘열린고용 대책’에도 이들에 대한 대책은 들어 있지 않다. 고졸 기능 인력을 뽑는 기업에 고용 관련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정부가 야심 차게 고졸 채용을 강조했지만 정작 취업률이 낮은 전문계고 졸업자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정부는 오히려 올해부터 기계편물과 양복 등 전문계고 비인기학과 종목 8개를 기능경기대회 종목에서 폐지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건설 기능 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야겠지만 목공 등 공예와 요리·미용 부문 등은 단계적으로 기능대회 종목에서 폐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작년 기능대회 입상 166명 중 61명 삼성 입사 ▼
현대중공업 13명 2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한 ‘고졸 인재’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곳은 어딜까. 결과는 삼성그룹이었다.

2010년 전국기능대회 고교 3년생 금·은·동 입상자 166명 중 취업에 성공한 93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65.6%인 61명이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2위인 현대중공업은 13명(14.0%)에 그쳤다. 삼성그룹은 이들 고교 졸업자를 포함해 지난해에만 전국기능대회 입상자 112명을 뽑았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삼성전자가 36명을 채용해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삼성중공업(12명) 삼성SDI(3명) 삼성테크윈 삼성LED(2명) 등의 순이다. 제조업이 아닌 신라호텔도 요리부문 금메달리스트를 뽑았다.

삼성이 유능한 기능 인력을 많이 뽑는 것은 그룹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던 2009년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장에 참석해 “제조업의 힘은 현장에서 나온다”며 “기능경기대회를 지원하고 입상자를 계속 특별 채용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기능 인력 대거 채용이 국내 전체 산업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10년 후 지금 뽑은 고졸 인력이 숙련 인력이 됐을 때 삼성과 다른 기업의 현장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