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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가니 피해자지?”… 아이들 두번 울려

입력 | 2011-10-12 03:00:00

■ 박보영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인터뷰




박보영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11일 “‘도가니’ 열풍 속에서 피해자들이 사생활 노출로 또 다른 피해를 보고 있다”며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변호사 단체 대표가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광주 인화학교 아이들은 ‘도가니’ 사건이 알려진 뒤 ‘너도 도가니(피해자)지?’ ‘너도 (피해자) 맞지?’라고 묻는 주변의 지나친 관심에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습니다. 어린 피해자들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고 보호하는 것이 성범죄 사건 처리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박보영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50·사법시험 26회)은 11일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달부터 뜨겁게 불어닥친 ‘도가니 열풍’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피해자 보호’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달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집중 재조명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유사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아동·장애인 대상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다시 정하기로 하는 등 사회 전체가 성범죄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가득했지만 ‘피해자 인권’은 잊고 있었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성범죄 수사와 재판뿐 아니라 언론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92년 세워진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200여 명의 회원을 둔 대표적 여성 법조인 단체. 변호사 단체 대표가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

박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성범죄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부모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거나 공판 때 방청객을 퇴정시키는 등 보호조치가 많이 강화됐지만 아직까지 완전하진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26조는 16세 미만이거나 장애인인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을 영상 녹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영상물 자체가 완전한 증거로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법 30조는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나 그 변호사와 마주하지 않도록 비디오 중계로 법정 증언을 하도록 규정했지만 강제 규정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박 회장은 “가해자 측 변호인들은 성범죄 피해자를 어떻게든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서로 원해서 성관계를 가진 것 아니냐’ ‘당신의 성적 취향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욕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어린 성범죄 피해자들은 언론에 노출되면서 더 큰 충격을 받는다”며 “성범죄 처벌에 국민 여론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노출되는 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성범죄 인정을 엄격하게 하되 형량을 높여 범죄 예방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면서도 판사의 낮은 선고형을 막기 위해 ‘법정형’을 높이고 판사의 재량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향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여론에 의해 법원의 재판이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는 의미다.

○ 여성 변호사가 성폭력 피해자를 잘 이해

박 회장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여성 변호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남성 변호사와의 상담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젊은 여성 변호사들이 한국성폭력상담소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피해자 보호 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주기 위한 공익사업을 준비 중이다. 박 회장은 “여성변호사회 회원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피해 회복을 위한 법 절차를 알려주고 수사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또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려면 사건 발생 직후 병원에서부터 고소, 민사소송, 형사보상 절차까지 전문성 있는 변호사가 원스톱 서비스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