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 금융개혁 발등의불
한국의 금융소비자협회 등이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확산된 금융자본 규탄시위를 국내에서도 열기로 한 가운데 한국 금융자본의 탐욕스러운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지만 국내 은행은 서민을 담보로 역대 최고의 순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고배당에 집착하지 말고 이익을 많이 낼 때 현금을 쌓아 금융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 한국 금융의 ‘돈잔치’
국내 은행권에서는 1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은행장과 감사 등의 임원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최근 3년 동안 50억 원이 넘는 수입을 챙긴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경제계는 은행 임원뿐 아니라 직원들의 임금 수준도 제조업체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본다. 하지만 5개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은 1243만 원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주요 수출기업 직원 1인당 순이익(1635만 원)보다 392만 원(24%) 적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은 그동안 예대마진과 보유주식 평가차익 덕분에 쉽게 돈을 벌어왔는데도 이익을 향유하는 데만 치중해온 측면이 있다”며 “과점적 지위로 얻은 이익이라면 일부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탄받는 미국 월가와 닮은꼴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자국 정부에 제시한 개혁안 12개 항목 가운데 절반 정도는 국내 금융 관련 개혁과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나친 성과급, 대학생 빚 문제, 소비자 보호 강화, 역외펀드 규제 같은 금융개혁안에 대해 국내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역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 중 미국 대학생들의 과도한 부채는 한국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상당수 대학생이 대부업체를 이용하면서 연 40%대의 빚에 짓눌려 있다. 대학생 1인당 대부업체에 진 빚이 160만 원에 이르는 것은 제도권 금융회사의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각지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탈세를 일삼은 자국 기업들 때문에 1000억 달러(약 118조 원)에 이르는 세수 손실을 입은 것과 관련해 국내 일부 자산운용사와 기업도 이런 탈세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금감원에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 퇴임 후 2년간 업무 관련성이 있는 민간회사에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한 점은 미국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제도다. 저축은행 사태라는 홍역을 치르면서 얻은 결실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